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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다 알기 쉬운 경주이씨 씨족사 - 1

녹전 이이록 2021. 8. 2. 09:11

보다 알기 쉬운 경주이씨 씨족사 - 1

 

모 블로그에 보다 알기 쉬운 경주이씨 씨족라는 제목의 글이 아래와 같이 올라 있습니다.

많은 경주이씨에 대한 글에 잘못된 내용이 너무나 많이 서술되어 있습니다.

잘못된 내용은 원문에 * 표시를 하고 뒤에 수정하여 올립니다.

 

경주이씨 씨족

시조 이알평(李謁平) 이후의 실전세계(失傳世系)에 대하여는 백사파(白沙派)'무진보(戊辰譜)'에서 ‘28대의 실전세계(失傳世系)’를 수록했고, 또 광무 연간의 '갑진보(甲辰譜)'에서도 ‘35대의 실전세계(失傳世系)’를 수록하였는데, 이 자료의 발견경위와 내용 등이 분명치 않아 신빙할 수 없다는 점이 '정묘대종보(丁卯大宗譜)' <실전세계(失傳世系)의 고찰(考察)>에 밝혀져 있다.

 

우리나라의 이씨(李氏)는 중국에서 귀화해 온 몇몇 본()의 이씨(李氏)를 제외하면 거의 이알평(李謁平)의 후손에서 *본관(本貫) 분관(分貫)한 것이다.

 

이알평(李謁平)의 후손에서 이개(李開)*시조 분관조(분적조)로 하는 *협천이씨 합천이씨(陜川李氏), 이위(李渭)*시조 분관조(분적조)로 하는 차성이씨(車城李氏). 이구를 *시조 분적조(분관조)로 하는 우계이씨(羽溪李氏)*갈라졌다. 분적되었다.


또 경주이씨(慶州李氏)의 중시조인 이거명(李居明)의 후손에서도 몇 개의 관향이 나누어졌다.

 

* 이거명(李居明)의 증손 이윤장(李潤張)의 후손이 평창 이씨(平昌 李氏), 삭제
* 아우인 이윤원(李潤遠)의 후손이 가평 이씨(加平 李氏), 삭제

 

5세손 이주좌(李周佐)분적조(분관조)로 한 그 후손이 아산 이씨(牙山李氏),
6세손 이우칭(李禹稱)분적조(분관조)로 한 그 후손 재령 이씨(載寧李氏),

 

*이양식(李陽植)을 시조로 하는 우계 이씨(羽溪李氏) 삭제

 

*17세손  (18세) 이영행(李永倖) ⇒ 이영재(李永榟)와 이군재(李君榟) 형제를 분적조로 한 그 후손이 진주 이씨(晉州李氏),
*22세손  (23세) 이반계(李攀桂)분적조로 한 그 후손이 원주 이씨(原州李氏)로 갈려 나갔다.
17세손( ? ) 이임간(李林幹)을 분적조로 한 그 후손이 장수이씨(長水李氏) 이다.

 

경주이씨(慶州李氏)는 고려 말 익재(益齋) 이제현(李齊賢)을 배출하면서 삼한(三韓)의 명족(名族)으로 위치를 굳히게 되었다.

 

고려 말에 생존했던 1421세의 조상님을 파시조(派始祖)로 하여 14개 대파로 나누어진다.

 

*17세조인 이규 16세 이인정(李仁庭)을 파시조로 한 그의 후손이 평리공파(評理公派),
17이관(李琯)파시조로 한 그의 후손이 이암공파(怡庵公派),
17 이제현(李齊賢)파시조로 한 그의 후손이 익재공파(益齋公派),
17 이지정(李之正)파시조로 한 그의 후손이 호군공파(護軍公派),
17 이천()파시조로 한 그의 후손이 국당공파(菊堂公派),
17 이매(李邁)파시조로 한 그의 후손이 부정공파(副正公派),
17 이과(李薖)파시조로 한 그의 후손이 상서공파(尙書公派),
17 *이수(李蓚) 이조(李蓨)를 파시조로 한 그 후손이 사인공파(舍人公派)로 나누어진다.
15세조 15세인 이강(李康+)파시조로 한 그의 후손이 판전공파(判典公派)이고
21세조 21세 이지수(李之秀)를 파시조로 한 그의 후손이 월성군공파(月城君公派),
19세조 이양오(李養吾)를 파시조로 한 그의 후손이 직장공파(直長公派),
19세 이존오(李存吾)를 파시조로 한 그의 후손이 석탄공파(石灘公派),
19세 이존중(李存中)를 파시조로 한 그의 후손이 진사공파(進士公派),
19세 이존사(李存斯)를 파시조로 한 그의 후손이 교감공파(校勘公派)이다.

 

14대파(大派) 아래에서 *7080의 소파(小派) 중소파(中小派)로 다시 나누어졌는데 그 중에서도 융성하기는 상서공파(尙書公派)의 오신(五臣)집 중 <백사(白沙) 이항복(李恒福)>, 익재공파(益齋公派)의 이른바 <8()> 화곡(華谷) 이경억(李慶億)집>. 그리고 매죽헌(梅竹軒) 이완(李浣) 대장을 낳은 국당공파(菊堂公派)를 들 수 있다.

 

조선조에 <백사(白沙)>에서만 영의정 4, 좌의정 2, 대제학 2명이 나왔고, <8별집>에서 좌의정과 대제학이 각각 1, <국당공파(菊堂公派)>에서 좌의정 1명을 내 조선조 경주이씨(慶州李氏)의 융성은 사실상 이 3파가 중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