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이씨 벌열(閥閱)

경주 이씨 벌열(閥閱) - 1

녹전 이이록 2009. 3. 29. 14:05

■ 경주 이씨 벌열(閥閱) - 1

 


벌열(閥閱)이란 권력 싸움에서 승리하여 오랜 동안 세력을 누리며 지체를 유지해 온 가문을 말한다.

 

조선 후기의 벌열은 붕당 정치가 변질되는 속에서 정권을 유지하며 특히 왕실과의 통혼관계 속에서 세도를 부리는 경우가 많았다.

 

조선 후기에 이르러 양반 중심의 사회에 신분제의 변동이 일어났다.

 

양반 중 계속 정권에 참여한 양반을 벌열, 정권에서 소외되어 지방에 토착하여 기반을 가진 양반을 향반(鄕班), 향반 중에서 가세가 몰락하여 쇠잔한 양반을 잔반(殘班)이라 하였다.

 

향반은 벌열에 비하여 지위가 떨어졌으며, 잔반은 대부분 소작농이 되었는데 잔반의 수는 점차 늘어갔다.

 

그들 벌열 가문은 학벌, 인맥, 지연 등에 의해 유대 관계를 공고히 하였는데, 정쟁이 치열해지고 노론 중심으로 일당 전제화가 추구되면서 그 모습을 두드러지게 드러냈다.

 

당시의 대표적인 벌열 가문으로는 숙종 때의 청풍 김씨, 광산 김씨, 여흥 민씨, 영조 때의 남양 홍씨, 경주 김씨, 세도 정치기의 안동 김씨, 풍양 조씨, 그리고 고종 때의 여흥 민씨 등의 가문이 대표적이었다.

 

우리 경주 이씨 가문에 벌열에 오른 인물은 다음과 같다.


 

● 상신(相臣)


상신(相臣)은 고려의 삼사(三師) 삼공(三公)과 문하시중(門下侍中) 판삼사사(判三司事) 삼중대광(三重大匡) 중대광(重大匡) 개부의동삼사(開府儀同三司) 중서령(中書令) 상서령(尙書令)과 조선의 영의정 좌의정, 우의정을 상신으로 한다.


조선(朝鮮)왕조시대의 최고 관직으로서 서기 1,400년(정종 2년)에 도평의사사(都評議使司)를 의정부(議政府)로 개편하고 영의정(領議政:정1품). 좌의정(左議政:정1품).  우의정(右議政:정1품) 각 1명씩을 두었는데 이들 3의정을 황각(黃閣)또는 태사(台司)라고도 일렀다

 

조선시대의 상신은 총 336명이 역임을 하였으며 그중에서 무과(武科)출신은 7명이었고 음보(陰補)가 20명이었으며 유일이 5명 배출되었다

 

그리고 나머지 304명은 모두가 문과(文科)출신들이었다

 

이제현(李齊賢): 高麗恭愍王朝, 右議政(3). 門下侍中  


◆ 전고대방에 상신으로 올라있는 조상(조선시대. ○ 표시)


○이항복(李恒福): 宣祖朝, 領議政            ○이경억(李慶億): 顯宗朝, 左議政

○이  완(李  浣): 顯宗朝, 右議政            ○이광좌(李光佐): 景宗朝, 領議政

○이태좌(李台佐): 英祖朝, 左議政            ○이종성(李宗城): 英祖朝, 領議政

○이경일(李敬一): 純祖朝, 左議政            ○이유원(李裕元): 高宗朝, 領議政


 

● 문형(文衡)


대제학(大提學)을 일컫는다.

 

고려 시대에 보문각·우문관·진현관에 둔 정2품 또는 종2품 벼슬이다.

 

조선 시대에 둔 홍문관과 예문관의 으뜸 벼슬이며 정2품으로 태종 1년(1401)에 대학사를 고친 것이다.

 

대제학은 지금의 장관급이고. 대제학이 있던 곳은 홍문관(弘文館)과 예문관(藝文館)이다.

 

홍문관(弘文館)은 조선시대 궁중의 경서(經書).사적(史籍)의 관리. 문한(文翰)의 처리 및 자문에 응하는 일을 맡아보던 관청으로 옥당(玉堂).옥서(玉署)라고도 하며. 사헌부(司憲府) 사간원(司諫院)과 더불어 삼사(三司)라고 한다.

 

예문관(藝文館)은 조선시대에 칙령(勅令)과 교명(敎命)을 기록하는 일을 맡아보았으며 개국 초 고려의 관제에 따라 예문춘추관(藝文春秋館)으로 합쳐졌던 것을 1401년(태종)에 춘추관 을 분리하여 예문관으로 개편하였다.

 

넓게 말하면 홍문관은 학문을 연구하는 기관이고, 예문관은 왕명 등으로 나가는 문서를 만드는 기관이다.


◆ 전고대방에 문형으로 올라있는 조상(○ 표시)

 

○ 이항복(李恒福)(명종조. 중조 25세), 

○ 이인엽(李仁燁)(숙종조- 화곡 이경억 자. 중조 30세), 

○ 이광좌(李光佐)(경종조- 백사 이항복 4세손. 중조 29세)

* 이희(李暿)(태종조. 중조 21세. 홍문관 대제학. 예문관 대제학- 족보 기록)  

* 이래(李來)(태종조. 중조 20세. 한국민족대백과 사전)

 

● 호당(湖堂)


조선시대에 처음에는 독서당(讀書堂)이라 하였는데 뒤에 호당(湖當)으로 바꾸었다.

 

젊은 문관 가운데 재덕(才德)을 갖춘 유망한 젊은 문신(文臣)을 뽑아 사가(賜暇 - 조정에서 관리에게 휴가를 베풀던 일)하여 오로지 글만 읽게 하던 일과 곳을 말한다.

 

즉 문신 관리에게 휴가를 주어 독서당에서 글을 읽게 하던 일을 말한다

 

세종 때부터 젊고 유능한 문신을 뽑아서 은가(恩暇)를 주어 독서에 전념토록 하여 인재를 키워온 제도로, 한편 사가(賜暇)라고도 한다.

 

호당이란 지금의 독서당의 별칭이며, 문신으로 여기에 뽑히면 최고의 명예로 여겼으며 출세 길도 빨랐다.

 

호당(湖堂)에는 젊고 유능한 문신(文臣)을 뽑아 일정기간 공부에만 전념케 하는 국비 장학생으로 대제학(大提學)이 뽑았다.

 

문신(文臣)의 명예로 여겨 높은 벼슬에 오른 사람은 거의 이 호당출신이며 대제학은 호당출신이 아니면 임명될 수 없었다.


◆ 전고대방에 호당으로 올라있는 조상(○ 표시)

 

○이종준(李宗準)(중종조).  ○이  원(李  원)(중종조).  ○이항복(李恒福)(선조조)


이종준(李宗準)(중종조)     이  원(李  원)(중종조)     이항복(李恒福)(선조조)

이사균(李思鈞)(연산군)     이을규(李乙奎)(종종조)     이대방(李大邦)(선조조)

이준경(李俊慶)(명종조)     이태좌(李台佐)(경종조)     이정좌(李鼎佐)(현종조)

이경오(李敬五)(현종조)     이종성(李宗城)(영조조)     이유승(李裕承)(철종조)

이유혜(李裕惠)(철종오)     이유원(李裕元)(헌종조)     이주영(李주영)(고종조)

 

이집구(李集龜)(순조조)      이  철(李  鐵)(선조조)    이숭수(李崇壽)(성종조)

이  오(李  塢)(      )      이  절(李  節)(명종조)    이문좌(李文佐)(성종조)           

이종지(李種地)(세종조)      이문병(李文炳)(      )    이인신(李仁臣)(      )

이중협(李重協)(정조조)      이  통(李  通)(중종조)    이권국(李權國)(      )


 

 

● 경연(經筵)


임금에게 유학의 경서를 강연하는 일로 경악(經幄) 또는 경유라고도 한다.

 

임금에게 경사(經史)를 가르쳐 유교의 이상(理想)정치를 실현하려는 것이 목적이었으나, 실제로는 왕권의 행사를 규제하는 중요한 기능을 수행하였다.

 

고려 때 예종이 경연을 처음 도입했으나 그리 활발하지 못하였으며, 조선시대에 들어와서 숭유정책의 실시에 따라 경연은 비약적으로 발전하였다.

 

이에 우리 조상으로써는 다음과 같다.

 

이유태(李惟泰) - 효종조(孝宗朝), 이참(吏參),

이세필(李世弼) - 숙종조(肅宗朝), 이참(吏參).


 

● 청백리(淸白吏)


청백리(淸白吏)라고 하면 인품, 경력, 치정 등이 모든 관원의 모범이 되는 인물을 칭할 때 쓰는 말이다.

 

관례로 보면 청백리로 녹선이 되고 뽑히게 되면 품계가 오르고, 그 자손은 음덕으로 벼슬도 할 수 있는 특전을 얻었으며, 본인과 함께 가문의 큰 영광으로 여겼다.

 

이조시대에는 의정부, 육조, 한성부의 2품 이상(二品以上)관원과 대사헌, 대사간이 후보를 엄선하여 왕(王)의 재가를 얻어 녹선되는 영광의 지위라 할 수 있다.

 

고려의 양리제도(良吏制度)를 본받아 조선왕조는 청백리제도를 더욱 체계적으로 발전시켰고 그에 따른 혜택을 왕명으로 정하는 등 청백리 양성에 크게 산경을 썼다.

 

조선 말기 학자 강효석(姜斅錫)이 저술한 전고대방(傳稿大方)에 따르면 후대에 추증한 것이긴 하지만 첫 임금인 태조 때에도 5명의 청백리가 기록되어 있다.

 

이후 조선조 27대 519년간에 걸쳐 218명의 청백리가 나왔는데 이를 전기, 중기, 후기로 나누어 보면 건국부터 임란까지 200년간 162명이고 임란이후 순조까지 270년간 56명, 헌종이후 순종까지 한 분도 없는 것으로 분류된다.

 

그러나 이는 “전고대방”에 수록된 것 말고도 “조선왕조실록”에는 태조에서 선조 때까지 74 명, 인조 때부터 정조 때까지 25명의 청백리 기록이 보이고 있어 정확히 집계할 경우 최소 한 317명이 넘을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조선시대의 청백리는 평균 1년7개월에 1명 정도씩 배출된 것을 알 수 있다.

 

임금별로 가장 많은 청백리 숫자를 보면 명종이 45명으로 가장 많고, 중종 35명, 선조 27 명, 숙종 22명, 성종 20명, 세종 15명, 영조 9명 등의 순이다.

 

조선시대는 또 살아있는 관리를 ‘淸白吏‘라 부르지는 않고 '廉謹吏'로 부르기도 하였다.

 

실록 등의 기록에 따르면 “본인이 생존시는 '염근리'라 부르며 포상하거나 정려했다. 청백리의 칭호는 사후에 부르는 것이었는데 그 자손은 국가에서 서용해 주었다.”라고 되어 있다.

 

이처럼 본인이 죽은 후 청백리로 부른 것은 청백리 칭호를 받은 관리가 그 후 변질하거나 부정에 관련했을 때 청백리의 명예실추를 방지하기 위한 배려였다.

 

조선정부가 청백리 제도의 유지를 위해 얼마나 애썼는가를 알려주는 단적인 본보기가 아닐 수 없다.

 

이 같은 청백리를 선정하는 기준으로 조선왕조도 고려의 “수령오사”와 비슷하게 “수령칠 사”를 마련했다.

 

즉 [농업과 잠업을 번성토록 할 것], [인구를 늘릴 것], [학교를 일으킬 것], [군정을 바르게 할 것], [부역을 고르게 할 것], [재판을 간명히 할 것], [시기를 하지 말 것] 등인데 고려시대보다 두 가지가 첨가됐다.

 

“수령칠사“ 말고도 조선시대에는 "시무십일조"등의 평가기준이 있었는데 이 모든 것은 조선시대의 대표적 목민관이었던 다산 정약용에 의하여 요약되고 있다.

 

다산은 그의 목민심서에서 “청렴은 수령의 본무요 모든 선의 근원이며 덕의 바탕이다. 청렴해야 백성이 따르고 충성을 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 같은 청백리 기준을 모두 뛰어넘어 후세에 누구나 청백리임을 부인치 않을 사람이 바로 황희, 맹사성, 박수량을 꼽을 수 있다.

 

누구에게나 알려진 황희(1363~1452)눈 영의정 생활을 18년이나 했고 관직 생활을 60년이나 계속하여 청백리로 뽑혀 세종묘에 배향되는 영예를 안았다.

 

한마디로 “정과 의가 아니면 행하지 않는 선행으로 한평생을 보냈다”고 할 수 있다.


◆ 전고대방에 청백리로 올라있는 조상(○ 표시)

 

조선시대에 청백리로 올라 있는 조상님은 아래의 두분이시다.

 

○이정보(李廷보)(세종조).   ○이항복(李恒福)(선조조),  ○

 

이외 아래의 청백리는 어떤 자료에서 나온 것인지 알 수 없다.

 

이철견(李鐵堅)(태종조),     이지수(李之秀)(태종조),     

이정보(李廷俌)(세종조),     이석손(李碩孫)(세종조),     이종지(李種地)(문종조),

이문좌(李文佐)(문종조),     이을규(李乙奎)(문종조),     이유인(李有仁)(문종조),

이  절(李  節)(단종조),     이종준(李宗準)(성종조),     이  구(李  龜)(성종조),

이  원(李元및맹)(연산조),   이윤경(李澗慶)(중종조),     이양국(李良國)(명종조),

 

이정복(李廷馥)(명종조),     이몽필(李夢弼)(명종조),     이항복(李恒福)(선조조),

이  영(李  領)(선조조),     이수일(李守一)(선조조),     이개립(李介立)(선조조),

이대진(李大震)(선조조),     이경진(李景震)(선조조),     이성중(李誠中)(선조조),

이경휘(李慶徽)(인조조),     이시완(李時莞)(인조조),     이유태(李惟泰)(인조조),

이경억(李慶億)(인조조),     이시모(李時模)(인조조),     이시성(李時省)(효종조),

 

이인실(李仁實)(효종조),     이  장(李  暲) (효종조),     이원경(李元慶)(현종조),

이종문(李宗文)(현종조),     이종상(李宗祥)(현종조),      이종창(李宗昌)(현종조),

이경오(李敬五)(현종조),     이정좌(李鼎佐)(현종조),      이  정(李  정)(현종조), 

이성룡(李聖龍)(숙종조),     이관국(李觀國)(숙종조),      이태화(李泰和)(숙종조),

이영서(李永瑞)(영종조),     이  병(李  炳)(숙종조),      이경일(李敬一)(영조조),

 

이완성(李完城)(영조조),     이계철(李啓哲)(정조조),      이종적(李宗迪)(정종조),

이계숙(李啓潚)(정조조),     이계주(李啓周)(정조조),      이유원(李裕元)(헌종조),

이주영(李冑榮)(철종조),     이유승(李裕承)(고종조)


 

● 절의(節義)


절개와 의리, 신념, 신의 따위를 굽히지 아니하고 굳게 지키는 것으로

개절(介節)·절(節)이라고도 한다.

 

선비 정신의 본질, 즉 선비가 지녀야할 필수 덕목이 절의(節義)이다.


이존오(李存吾): 高麗末, 杜門諸賢.             이  수(李  蓚): 高麗末, 入山節士

이  원(이元밑맹): 燕山君, 戊午士禍            이중협(李重協): 景宗朝, 辛壬士禍

이시영(李始榮): 獨立運動, 殉義節人

 

 

* 두문제현(杜門諸賢)

고려 말 조선 건국으로 고려가 망하자 불사이군(不事二君)의 충절로

두문동(杜門洞)에 들어가 은거하여 이성계(李成桂)의 朝鮮에 충성하지 않고 순절한 고려의 유신들.

 

*入山節士(입산절사)

고려 말 조선 건국으로 고려가 망하자 산야에 은거하여

이성계(李成桂)의 부름에 나가지 않고 절개를 지킨 고려의 유신들.

 

*戊午士禍(무오사화)

조선 연산군 4년(1498)에 유자광 중심의 훈구파가 김종직 중심의 사림파에 대해서 일으킨 사화.

 

*辛壬士禍(신임사화)

조선 경종 원년(1721)부터 왕위 계승 문제를 둘러싸고 노론과 소론 사이에 일어난 사화.

 

*殉義節人(순의절인)

의를 따라 죽고 절개를 지킨 사람으로 성재공은 광복 후 초대 부통령에 당선되었으나,

이승만 대통령의 통치에 반대하여 사직하였다.


 

● 장신(將臣)


명장(名將)을 일컫는다.


◆ 전고대방에 명장으로 올라있는 조상(○ 표시)

 

○이  완(李 浣): 仁祖朝, 御營摠戎使 創設(甲子). 御營大將. 訓練大將,

○이인하(李仁夏): 肅宗朝, 摠戎使.

○이현직(李顯稷): 高宗朝, 摠戎使. 御營大將. 統制使

 

이몽린(李夢麟): 明宗朝, 兵使, 捕盜大將,          이  완(李 浣): 仁祖朝, 訓練大將,

이인하(李仁夏): 肅宗朝, 摠戎使                  이현직(李顯稷): 高宗朝, 統制使


*捕盜大將(포도대장) 

조선 시대에 수도권 치안을 담당하던 관청이 포도청이다.

포도청의 으뜸 벼슬로 품계는 종2품, 좌우 포도청에 각 한 명씩 있었다. ≒포장.

 

*訓練大將(훈련대장)

훈련도감은 선조 26년(1593) 임진왜란중 영의정 유성룡(柳成龍)이 명나라 척계광(戚繼光)의

기효신서(紀효新書)에 의하여 포수(砲手), 사수(射手), 살수(殺手) 등 삼수병(三手兵)을 양성

하기 위하여 설치한 것으로 지휘관을 훈련대장(訓練大將)이라 하였다.

 

송시열, 이완의 북벌운동은 조선 효종 때 추진된 청(淸)을 치기 위한 계획으로 군대를 훈련시키며

한편으론 성지(城池)를 개수(改修)하는 등 전쟁 준비를 하였으나

10년후 효종의 죽음으로 수포로 돌아갔다.

 

*摠戎使(총융사)

총융청은 인조 2년에 수원(水原), 양주(楊州), 광주(廣州), 장단(長湍), 남양(南陽) 등 서울

외곽의 군무를 담당하기 위하여 설치한 것으로 지휘관을 총융사(摠戎使)라 하였다.

 

*統制使(통제사)

임진왜란 때에, 경상·전라·충청 세 도의 수군을 통솔하는 일을 맡아보던 무관 벼슬. 또는

그 벼슬아치로 선조 26년(1593)에 설치하여 이순신을 임명하였으며 삼도 통제사 · 통곤(統곤) ·

통제사라고도 한다.


 

● 문무제곤록(文武制곤錄)

*곤- 問- 口대신困


◆ 선조 경자 기찰 호남(宣祖更子譏察湖南)

○도체찰사(都軆察使) 이항복(李恒福)

 

◆ 인조 갑자 괄란(仁祖甲子适亂)

○부원수(副元帥) 이수일(李守一)

○부체찰사(副軆察使) 이시발(李時發)

 

◆ 인조 7월 장만 체대(仁祖七月張晩遞代)

○부원수(副元帥) 이수일(李守一)

 

◆ 인조 경진 공금주(仁祖庚辰攻錦州)

○부장군(副將軍) 이완(李浣)


 

● 문인록(門人錄)


○이진(李王+眞)

- 자 온고(字溫古). 호 동암(號東庵). 자 익재(子益齋)

 

○상당 백이정 문인(上黨白臣+頁正門人)

- 이제현(李齊賢): 仲思. 益齋. 文忠公

 

○점필재 김종직 문인(佔畢齋金宗直門人)

- 이원(李元밑맹): 자 낭옹(字浪翁). 호 재사당(號再思堂)

- 이종준(李宗準): 자 중균(字仲鈞). 호 용헌(號심변+庸軒 - 慵 齋)

 

○모재 김안국 문인(慕齋金安國門人)

- 이여(李여-余밑田): 문학

 

○수암 박지화 문인(守庵朴枝華門人)

- 이대건(李大建): 진사. 호 오촌(號梧村)

?- 이덕윤(李德胤): 서봉(西峯- 西溪)- 李得胤?

 

○사계김장생문인(沙溪金長生門人)

- 이정(李淀): 忠武公守一子

 

○신독김집문인(愼獨金集門人)

- 이유택(李惟澤)- 草慮兄. 縣監

 

○우암송시열문인(尤庵宋時烈門人)

- 이세필(李世弼): 龜川


 

● 서화가(書畵家)

 

○ 고려 시대

 

- 이제현(이제현): 자 중사(字仲思). 호 익재(益齋). 표옹(標翁)

충렬왕시서인물마(忠烈王時書人物馬)

 

○ 조선 세조시(朝鮮世祖時)

 

- 이종준(李宗準): 자 중균(字仲均). 호 용재(慵齋). 용헌(慵軒). 상우당(尙友堂).

부휴거사(浮休居士). 장육사인(藏六舍人) - 書畵

 

○ 조선 명종시(朝鮮明宗時)

 

- 이항복(李恒福): 호 백사(白沙). 필운(弼雲). 소운(素雲)- 書

- 이흘(李忔): 자 상중(尙中). 호 설정(雪汀). 오계(梧溪). 지제교(知制敎) - 書

 

○ 조선 현종시(朝鮮顯宗時)

 

- 이하곤(李夏坤): 자 제대(載大). 호 담헌(澹軒). 부솔(副率)- 山水

 

○ 조선 헌종시(朝鮮憲宗時)

 

- 이희수(李喜秀)- 자 지삼(芝三). 호 소남(少南). 경지당(景止堂)- 書畵


 

● 종묘 배향록(宗廟配享錄)

- 전고대방에 실린 조상

 

- 태종실(太宗室)- 이래(李來) 계성군(鷄城君)

- 장조실(莊祖室)- 이종성(李宗城) 오천(梧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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