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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이씨 시조 알평 약력

녹전 이이록 2022. 8. 25. 07:59

■ 경주이씨 시조 알평 약력

 

시조(알평)님에 대한 약력을 말해주세요.

 

답변)

 

이윤우 - 시조할아버지로 부터 74손 이윤우 ㅎㅎ 삭제

 

소견) 이이록

시조님 아들부터 중시조인 소판공 윗대까지 약 900년간의 계대는 모르기 때문에 시조세수로는 헤아려 말하지 않습니다.

 

중시조를 1세로 하여 후손계대를 헤아려 '중시조 38(=38) 이윤우'중시조님의 37세손(=37대손) 이윤우라고 해야 합니다

 

최용한

경주이씨는 신라 육성(六姓 : · · · · · )의 하나로 우리나라 이씨 중에서는 가장 역사가 오래된 씨족입니다.

 

<경주이씨 대동보> 총론편을 보면 경주이씨의 유래가 나옵니다.

 

자못 전설적이지만 신라성의 시조 6명은 모두 하늘로부터 내려옵니다.

 

6인천강설(六人天降說)이지요.

 

경주이씨의 시조 알평(謁平)은 처음에 하늘로부터 박바위[瓢岩표암]로 내려왔다는 것입니다. 이곳은 6(六村)중 알천 양산촌(閼川楊山村)인데 유리왕 9(서기 32)에 급량부(及梁部)로 행정구역 명칭이 바뀌었습니다.

 

서기 기원전 693월 초하루에, 6촌장이 알천(閼川)의 바위 위에 모여 양산(陽山) 아래를 바라보니, 이상한 기운이 번개 빛 같고 흰 말이 무릎을 꿇고 절하는 모양이 보여, 찾아가 보니 검붉은 알이 있는데, 말은 사람을 보고 슬피 울며 하늘로 올라가 버렸다.

 

그래서 6촌장이 그 알을 깨 보니 한 사내아이가 나타났습니다.

 

모두들 이상히 여겨 그 아이 이름을 혁거세(赫居世)라 불렀습니다.

 

이 혁거세가 13세가 되자 기원전 57년에 이를 왕으로 삼고 나라 이름을 신라라 하였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신라를 건국한 공로로 알평은 아찬(阿餐)의 벼슬에 올라 군사업무를 장악했고, 기원전 32(新羅 儒理王 8)에 이씨(李氏)로 성을 하사 받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이알평(李謁平)이 경주이씨의 시조가 되는데, 과거의 <경주이씨 족보>에는 이알평의 먼 후손 이거명(李居明)을 중시조 1()로 삼아 계대수(系代數)를 따져 왔습니다.

 

그래서 이알평부터 이거명까지는 몇 대가 흘러갔는지도 몰랐다가 근 2백 년 전 조선 말기 무렵에 경주이씨에서 갈라져 나간 *합천이씨(陜川李氏) 족보에서 이알평부터 이거명까지의 대수(代數)와 이름이 나타나 36대의 명단을 찾아냈다고 합니다. 1932년 분적종 합천이씨 임신대보에 처음으로 발굴되어 게재되었다는 ‘35대로 된 실전세계이나 이 계대는 사실적이지 않은 계대로 밝혀져 계대로 인정하지 않습니다.

 

이알평은 신라 법흥왕 23년 시호(謚號)*문선공(文宣公) 충헌공(忠憲公)으로 하였고, 무열왕 3년 은열왕(恩烈王)으로 추봉되었다고 합니다.

 

내용출처 : http://www.kjlee.pe.kr/intro/ure.htm

 

[36대의 명단을 찾아냈다고 합니다.] 삭제

- 1932년에 간행된 분적종 합천이씨 임신대보에 게재되었다는 '35대로 된 실전세계'는 사실적이지 못한 계대로 밝혀져 그 계대를 헤아려 읽지 않습니다.

 

이이록

 

경주이씨 종친의 문의에 답변을 주신 최용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오래전의 답변이라 답변 중 잘못된 내용이 있어 이를 바르게 고쳐 올립니다.

 

잘못된 내용은 원문에 [*............]로 지적하고 뒤에 수정하고 필요한 곳에 수정 뒤 표시 뒤에 설명 및 소견을 올립니다.

경주이씨는 신라 6(六姓 : · · · · · )의 하나로 우리나라 이씨 중에서는 가장 역사가 오래된 씨족입니다.

 

 [*<경주이씨 대동보>] 경주이씨 대종보.

 

1978년도에 간행한 족보가 경주이씨 대동보인데 이 대동보의 내용이 부실하여 9년만인 1987년도인 정묘년에 내용을 정리하여 중앙표준보로 경주이씨 대종보를 다시 간행한 대종보로 이를 경주이씨 뿌리의 근간으로 합니다.

 

총론 편을 보면 경주이씨의 유래가 나옵니다.

 

자못 전설적이지만 신라 성의 시조 6명은 모두 하늘로부터 내려옵니다.

 

6인천강설(六人天降說)이지요. 경주이씨의 시조 알평(謁平)은 처음에 하늘로부터 박바위[瓢岩 : 표암]로 내려왔다는 것입니다.

 

이곳은 육촌(六村)중 알천 양산촌(閼川 楊山村)인데 나중에 급량부(及梁部)로 행정구역 명칭이 바뀌었습니다.

 

서기 기원전 693월 초하루에, 6촌장이 알천(閼川)의 바위 위에 모여 양산(陽山) 아래를 바라보니, 이상한 기운이 번개 빛 같고 흰 말이 무릎을 꿇고 절하는 모양이 보여, 찾아가 보니 검붉은 알이 있는데, 말은 사람을 보고 슬피 울며 하늘로 올라가 버렸다.

 

그래서 6촌장이 그 알을 깨 보니 한 사내아이가 나타났습니다.

 

모두들 이상히 여겨 그 아이 이름을 혁거세(赫居世)라 불렀습니다.

 

이 혁거세가 13세가 되자 기원전 57년에 이를 왕으로 삼고 나라 이름을 신라라 하였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신라를 건국한 공로로 알평은 아찬(阿餐)의 벼슬에 올라 군사업무를 장악했고, 기원전 32

 

[*新羅儒理王八(신라 유리왕 8) 신라 유리왕 9에 이씨(李氏)로 성을 사성 받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이알평(李謁平)이 경주이씨의 시조가 되는데, 과거의 <경주이씨 족보>에는 이알평의 먼 후손 이거명(李居明)을 중시조 1()로 삼아 계대수(系代數)를 따져 왔습니다.

 

[*그래서 이알평부터 이거명까지는 몇 대가 흘러갔는지도 몰랐다가 근 2백 년 전 조선 말기 무렵에 경주이씨에서 갈라져 나간 합천이씨(陜川李氏) 족보에서 이알평부터 이거명까지의 대수(代數)와 이름이 나타나 36대의 명단을 찾아냈다고 합니다.] 삭제.

 

- 1932년 경주이씨 분적종 합천이씨 임신대보에 처음 발굴되어 게재되었다는 ‘35대로 된 실전 세계는 사실적이지 못한 계대임을 경주이씨 중앙화수회에서 조사 연구하여 밝혔습니다.

 

경주이씨 대종보 총편에 제목 실전세계의 고찰논문에 이 사항에 대하여 자세히 설명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