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이씨(慶州李氏, 月城李氏)에 대(對)하여
■ 경주이씨(慶州李氏, 月城李氏)에 대(對)하여
경주이씨에 대한 모든 내용은 1987년도에 간행한 ‘경주이씨 대종보’를 뿌리의 근간으로 하여야 합니다.
이를 참고로 하여 잘못 기술한 경주이씨에 대한 글을 바르게 수정하여 올립니다.
1. 시조 : 이알평(李謁平)
2. 유래
시조(始祖) 표암공(瓢巖公) 이알평(李謁平)은 박혁거세(朴赫居世) 탄생(誕生) 설화(說話)에 나오는 초기(初期) 신라(新羅)의 6촌 중 알천 양산촌(閼川楊山村 : 급량부)의 촌장으로 부족민을 다스렸다.
이알평(李謁平)은 신라(新羅) 건국 시 좌명공신(左命功臣)으로 <경주이씨 대종보>에 의하면 박혁거세(朴赫居世)가 왕(王)이 된 뒤 아찬(阿粲) 관직에 올라 군사업무를 장악했으며 32년(신라 유리왕 9년)에 양산촌 이씨(급량부 이씨)로 성을 사성(賜姓) 받았다고 한다.
신라(新羅) 법흥왕(法興王) 23년 시호(諡號)를 충헌공(忠憲公)으로 하였고, 무열왕 3년 은열왕(恩烈王)으로 추봉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 후의 후손(後孫)에 대한 계대(繼代)가 전(傳)해지지 않아 이알평(李謁平)의 원대손(遠代孫)이며 신라(新羅) 때 소판(蘇判) 벼슬을 지낸 진골(眞骨) 출신(出身)인 이거명(李居明)을 중시조로 하고 1세로 기세하고 있다.
3. 가문의 번영
경주이씨는 고려(高麗) 말(末)에 크게 세력(勢力)을 떨쳤고 조선(朝鮮)에 들어와서도 문과(文科) 급제자 178명, 상신 8명, 대제학 3명을 비롯하여 10여 명의 공신과 많은 학자와 명신을 배출하였다.
경주이씨 14개 대파 중 상서공파의 백사(白沙) 이항복(李恒福) 집안에서 가장 많은 인물을 배출하였고, 세칭 8별(鼈) 집으로 불리 우는 익재공파의 화곡(華谷) 이경억(李慶億) 집안과 매죽헌(梅竹軒) 이완(李浣) 대장을 낳은 국당공파가 그에 버금간다.
경주이씨가 조선에 배출한 상신· 문형 가운데 백사 집에서 영의정 4명, 좌의정 2명, 대제학 2명이 나왔고, 8별집의 화곡 집에서 좌의정과 대제학 각 1명, 국당공파 중의 정순공(靖順公) 이성중(李誠中) 후손의 매죽헌 집에서 좌의정 1명이 나와 이들 3파가 사실상 경주이씨의 주축을 이루었다.
고려(高麗)말(末)의 대학자(大學者)이자 외교가(外交家), 문장가(文章家), 충신(忠臣)이기도 했던 익재(益齋) 이제현(李齊賢. 1287~1367)이 고려(高麗) 때의 경주(慶州) 이씨를 대표한다.
이제현은 충선왕(忠宣王)부터 공민왕(恭愍王)까지 일곱 임금을 섬기며 여러 방면에 공적을 남겼고 문장가(文章家)였을 뿐만 아니라 탁월(卓越)한 외교가(外交家)였다.
조선시대(朝鮮時代)에는 8형제(兄弟)가 모두 문장(文章)에 뛰어나 8문장(文章)으로 꼽히는 박팽년의 사위인 이공린(李公麟)의 아들들과 임진왜란(壬辰倭亂)이 터지자 유성룡을 도와 병참 책임을 맡는 등 큰 활약을 한 이시발(李時發)을 비롯하여, 오성과 한음의 일화로 유명한 오성대감 이항복은 임진왜란 때 5차례나 병조판서를 역임하여 국난을 수습, 전후 정승에 올라 당쟁 을 막는데 힘쓴 조선시대 4대 명재상의 한 사람으로 청백리에 올랐다.
근대 인물로는 초대 부통령을 지낸 이시영(李始榮)과 재계의 거목이었던 삼성그룹의 이병철회장이 있다.
4. 계 파
중시조는 소판공(蘇判公) 이거명(李居明)이다.
경주(慶州)이씨는 중시조 이거명의 15 ~ 21세에서 크게 14대파로 나뉘고 다시 아래로 내려오면서 중소 70여개 파로 분파된다.
- 평리공파(評理公派) : 16세 이인정(李仁珽)을 파조로 한다
- 이암공파(怡庵公派) : 17세 이관(李琯)을 파조로 한다.
- 익재공파(益齋公派) : 17세 이제현(李齊賢)을 파조로 한다.
- 호군공파(護軍公派) : 17세 이지정(李之正)을 파조로 한다.
- 국당공파(菊堂公派) : 17세 이천(李蒨)을 파조로 한다.
- 부정공파(副正公派) : 17세 이매(李邁)를 파조로 한다.
- 상서공파(尙書公派) : 17세 이과(李薖)를 파조로 한다.
- 사인공파(舍人公派) : 17세 이조(李蓨)를 파조로 한다.
- 판전공파(判典公派) : 15세 이강(李康+羽)을 파조로 한다.
- 월성군파(月城君派) : 21세 이지수(李之秀)를 파조로 한다.
- 직장공파(直長公派) : 19세 이양오(李養吾)를 파조로 한다.
- 석탄공파(石灘公派) : 19세 이존오(李存吾)를 파조로 한다.
- 진사공파(進士公派) : 19세 이존중(李存中)를 파조로 한다.
- 교감공파(校勘公派) : 19세 이존사(李存斯)를 파조로 한다.
5. ‘경주이씨 항렬제차’ 표
35世..........36世...........37世...........38世..........39世...........40世...................41世...........
○榮(영)......圭(규)○......鍾(종)○......○雨(우)......相(상)○......○熙(희)炯(형)......在(재)○......
42世...................43世..................44世...........45世...................46世........................
○鎬(호)鍵(건)......濟(제)濬(준)○......○東(동)......丙(병)心(심)○......○敎(교)世(세)..........
53世...........54世...........55世..........56世..........57世...........58世........59世...............
泰(태)○......○模(모)......炫(현)○......○均(균)......鎔(용)○......淳(순)......秉(병)○.............
60世..................61世...........62世..........63世...................64世...........65世.................
○炅(경)杰(걸)......基(기)○......鈺(옥)○......洛(락)永(영)○......○植(식)......德(덕)○............
66世...................67世...........68世..................69世....................70世........................
○周(주)起(기)......鏞(용)○......○浩(호)洙(수)......住(주)綵)(채)○......○熏(훈)燁(엽)............
5-1 경주이씨 항렬제차(慶州李氏 行列第次)
35세 : 榮(영화로울 영), 36세 : 圭(서옥 규), 37세 : 鍾(술잔 종, 모을 종),
38세 : 雨(비 우), 39세 : 相(서로 상), 40세 : 熙(빛날 희), 炯(빛날 형),
41세 : 在(있을 재), 42세 : 鎬(냄비 호), 鍵(자물쇠 건), 43세 : 濟(건널 제). 濬(깊을 준)
44세 : 東(동력 동), 45세 : 丙(남녘 병),心(마음 심), 46세 : 敎(가르칠 교), 世(대 세)
47세 : 鎭(진압할 진), 48세 : 求(구할 구), 49세 : 根(뿌리 근), 50세 : 燮(화할 섭)
51세 : 埈(가파를 준), 52세 : 善(착할 선), 53세 : 泰(클 태), 54세 : 模(법 모)
55세 : 鉉(솥귀 현), 56세 : 均(고를 균), 57세 : 鎔(녹일 용), 58세 : 淳(순박할 순)
59세 : 秉(잡을 병), 60세 : 炅(빛날 경). 杰(뛰어날 걸), 61세 : 基(터 기),
62세 : 鈺(보배 옥), 63세 : 洛(물 락). 永(길 영), 64세 : 植(심을 식), 65세 : 德(큰 덕)
66세 : 周(두루 주), 起(일어날 기), 67세 : 鏞(큰 쇠북 용), 鎰(중량 일)
68세 : 浩(넓을 호), 洙(물이름 수), 69세 : 住(살 주), 綵(비단 채),
70세 : 熏(불길 훈), 燁(빛날 엽)
◈ 시조와 중시조와의 관계
시조세수는 시조의 아들부터 중시조 아버지 대까지 약 900년간의 계대가 실전되어 알 수 없기 때문에 시조세수는 헤아려 말하지 않고 중시조세수로만 헤아려 말합니다.
시조............중시조........항렬
..................1세 – 시조의 원대손
..................35세..........영(榮)
..................36세..........규(圭)
..................37세..........종(鍾)
..................38세..........우(雨)
.................39세..........상(相)
.................40세..........희(熙). 형(炯)
.................41세..........재(在)
.................42세..........호(鎬). 건(鍵)
.................43세..........제(濟)
.................44세..........동(東)
.................45세..........심(心). 병(丙)
.................46세..........교(敎). 세(世)
수정)
*시조세수 70세. 71세 ~ 80세. 81세로 나타낸 시조세수는 헤아랴 읽지 않습니다.
모두 삭제하여야 합니다.
왜냐하면 경주이씨는 시조 2세부터 중시조 아버지 대까지 약 900년간의 계대는 실전되어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6. 경주이씨 대동항렬을 최초로 만든 시기
1865년경 고종황제 초기 흥선대원군께서 섭정을 하고 계실 때 전국에 왕명으로 各(각) 性氏(성씨) 들은 各己(각기) 行列字(항열자)를 이에 따라 작명하고 長派(장파- 성씨 중 으뜸 파)의 항렬자를 따라 統一(통일)해서 性名(성명)만보더라도 그貫鄕(관향)과 항렬을 단번에 알아보고 서로 敦睦(돈목)하고 위아래 次序(차서)를 混同(혼동)해서 망발되는 일이 없게 하라고 하셨다.
7. 14 대파명
◈ 중시조 본손 계통에서 8대파
- 평리공파(評理公派)
- 이암공파(怡庵公派)
- 익재공파(益齋公派)
- 호군공파(護軍公派)
- 국당공파(菊堂公派)
- 부정공파(副正公派)
- 상서공파(尙書公派)
- 사인공파(舍人公派) 등이다.
◈ 중시조 지손(支孫) 계통에서 6대파
- 판전공파(判典公派)
- 월성군파(月城君派)
- 직장공파(直長公派)
- 진사공파)進士公派)
- 석탄공파(石灘公派)
- 교감공파(校勘公派) 등이 있다.
한편 경주이씨 분파도(分派圖)에는 전술한 10본의 분적종 중 성주이씨와 우계이씨는 거명의 윗대에서 분파되었으며 나머지는 그 아랫대에서 분파된 것으로 나타나 있다. 경주이씨는 고려 말에 크게 세력을 떨쳤고 조선에 들어와서도 문과 급제자 178명, 상신 8명, 대제학 3명을 비롯하여 10여 명의 공신과 많은 학자, 명신을 배출하였다. 8대파 중 상서공파의 백사(白沙:李恒福)집이 가장 많은 인물을 배출하였고, 익재공파의 세칭 8별(鼈) 집과 완(浣) 대장을 낳은 국당공파가 그에 버금간다.
경주이씨가 조선에 배출한 상신·문형 가운데 백사집에서 영의정 4명, 좌의정 2명, 대제학 2명이 나왔고, 8별집에서 좌의정과 대제학 각 1명, 국당공파 중의 정순공(靖順公:誠中) 후손에서 좌의정 1명이 나와 이들 3파가 사실상 경주이씨의 주축을 이루었다.
고려 말의 대학자이자 외교가, 문장가, 충신이기도 했던 익재(益齊) 이제현(李齊賢. 1287 ~ 1367)이 고려 때의 경주 이씨를 대표한다.
이제현은 충선왕부터 공민왕까지 다섯 임금을 섬기며 여러 방면에 공적을 남겼고 문장가였을 뿐만 아니라 탁월한 외교가였다.
조선시대에는 8형제가 모두 문장에 뛰어나 8문장으로 꼽히는 박팽년의 사위인 이공인(李公麟)의 아들들과 임진왜란이 터지자 유성룡을 도와 병참 책임을 맡는 등 큰 활약을 한 이시발(李時發)을 비롯하여, 오성과 한음의 일화로 유명한 오성대감 이항복은 임진왜란 때 5차례나 병조판서를 역임하여 국난을 수습, 전후 정승에 올라 당쟁 을 막는데 힘쓴 조선시대 4대 명재상의 한 사람으로 청백리에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