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천군(慶川君) 이해룡(李海龍) - 2
■ 경천군(慶川君) 이해룡(李海龍) - 2
- 사자관 이해룡에게 쓴 학봉 김성일 생의 글
- 鶴峯集(학봉집) 卷之二(권지2) 詩(시)
정사 황윤길. 부사 김성일이 문장과 글씨에 재주가 뛰어난 사자관(寫字官) 이해룡(李海龍)을 대동하고 일본에 사신으로 다녀왔을 때 학봉 김성일 선생께서 사자관 이해룡의 일본에서의 행적을 기록한 글입니다.
◈ 사자관(寫字官) 이해룡(李海龍)에게 주다. 병서(幷序)
만력(萬曆) 18년(1590, 선조 23) 봄에 일본의 *관백(關白)이 포로로 잡아갔던 우리나라 사람들을 돌려보내고, 우리 변경을 침범한 왜적의 머리를 베어서 바치면서 오직 통신사(通信使)를 보내 주기를 간청하였다.
그러자 성상께서는 그들이 공손하다는 이유로 특별히 오랑캐들의 청을 따라 주었다. 그리하여 신(臣) 황윤길(黃允吉)과 신 김성일(金誠一)을 정사와 부사로 삼아 절월(節鉞)을 주어 보냈는데, 사신이 수행해야 할 일 가운데에서 관계됨이 중한 것은 성상께서 직접 헤아려서 모두 지시하였다.
이에 비록 수천 리 밖에 나와 있었지만 대궐 뜰에서 직접 밝은 명령을 받들어서 일을 행하는 것만 같았다.
대궐 뜰에서 하직인사를 올리던 날 성상께서 하교하시기를,
“내가 듣건대, 왜국의 중이 제법 문자를 알며, *유구(琉球)의 사신도 항상 왕래를 한다고 한다. 그대들이 만약 서로 만나서 글을 주고받는 일이 있을 경우에는 글씨도 서투름을 보여서는 안 된다. 그대들은 유념하라.” 하였다.
우리들은 모두 용렬해서 본디 문장과 글씨의 재주가 모자랐는데, 일에 임해서는 이런 점에 전혀 생각이 미치지 못하였다.
상의 명을 듣고는 놀랍고 두려워서 서로 더불어서 왕명에 부응할만한 자를 찾아본 다음, 사자관 이해룡(李海龍)을 함께 보내 주기를 요청하니, 상께서 그러라고 하였다. 이해룡은 명이 내려지자 즉시 출발하였는데, 일찍이 아무런 대비책도 세워놓지 않고 있다가 곧바로 출발하였는바, 이것은 인정에 있어서 어려운 것이었다.
그런데도 이해룡은 이를 조금도 개의치 않았으니, 이 또한 아름답지 않은가.
대마도(對馬島)에 있을 적에 *현소(玄蘇)가 절에 걸 현판의 글씨를 써 주기를 요청하자, 이해룡이 곧바로 써서 주었는데, 현소가 이를 보배롭게 여겨 현판에 새겨 영구히 전하고자 하였다.
얼마 뒤 왜도(倭都)에 들어오자 글씨를 써 주기를 청하는 자들이 구름처럼 몰려들어서 관소(館所)의 문간이 시장바닥 같았다.
일행들이 이를 괴롭게 여겨 혹 문을 닫고 들어오지 못하게 하면 나무를 타고 담을 넘어 앞 다투어 들어왔는데, 이와 같이하기를 두어 달이 지나도록 그치지 않았는바, 이해룡이 이번 걸음에 쓴 것이 무릇 몇 장이나 되는지도 모를 정도였다.
당초에 이해룡이 사행에 끼었을 적에 사람들은 모두 집닭으로 여겼으니, 이국(異國)에서 이렇게까지 귀하게 대접받을 줄을 어찌 헤아리기나 하였겠는가.
성상의 지혜가 온갖 변화에 두루 주밀하여 일마다 적절하게 조처하였다.
그러므로 비록 지극히 자잘한 일이라도 두루두루 적당하게 대응함이 모두 이와 같았다.
그런데 하물며 이보다 더 큰일이겠는가.
이해룡과 같은 자는 비록 나라를 빛낸 자라고 하더라도 괜찮을 것이다.
어찌 작은 재주라 해서 가볍게 여길 수 있겠는가.
내가 *차천로(車天輅)와 더불어서 그 일을 직접 보았는바, 한마디 말을 기록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므로 각자 시 한 수씩을 지어서 그에게 주고, 또 서문을 지어 시의 첫머리에 적는다.
어여쁘다 그대 성질 착한데다가 / 憐汝性氣良
아름다워 비늘과 껍질 없구나. / 休休無甲鱗
일에 닥쳐 삼가고 부지런하니 / 趨事致勤謹
마음가짐 어쩜 그리 순진도 한가. / 秉心何眞醇
손에다가 *모추자를 가지고서는 / 手持毛錐子.
재주부림 묘한 경지 이르렀구나. / 爲藝亦妙臻
조정에서 내버리는 재주 없음에 / 朝家無棄才
사자관의 관직에 이름 들었네. / 名隷寫字人
사대문서 글씨 쓰는 직책 맡음에 / 職書事大書
*홍무체의 글씨 필세 새로웠도다. / 洪武筆勢新.
작은 글씬 터럭에다 새길 정도고 / 細字入秋毫
큰 글씨는 은 갈퀴와 비슷하였네. / 大字如鉤銀
어찌 중국 사람들만 놀랬으랴 / 豈但驚華人
황제도 글씨 보고 움찔했으리. / 應亦動皇宸
경인년 되던 해 그 해의 봄에 / 惟庚寅之春
내가 양곡 물가로 사신길 왔지. / 余行暘谷濱
*성주께서 나라 빛낼 생각 하시어 / 聖主念華國
그대 명해 사신 따라 가게 하였지. / 命汝隨使臣
아침나절 명령받고 저녁에 떠나 / 朝承命夕發
바닷길 만리 길을 건너게 됐지. / 涉萬里海津
이는 실로 사람에게 어려운 건데 / 此實人所難
그대는 홀로 이마조차 안 찌푸렸지. / 汝獨眉不顰
뒤 쫓아와 충주에서 나를 만나서 / 追余及中原
상종한 지 지금까지 며칠 되었나. / 相從今幾旬
왜인들이 제아무리 비루하지만 / 蠻人雖鄙野
그들 역시 명필 글씨 보배로 아네. / 亦知墨妙珍
앞 다투어 달려와서 글씨 구할 제 / 奔波乞其書
그 값이 만금보다 더 중하였네. / 重之萬金緡
부채에다 써 준 글씨 이미 많은데 / 蒲葵題已遍
편액 글씨 성문 위서 빛을 내누나. / 扁額照城闉
오랑캐 땅 서울에선 종이 값 뛰고 / 夷都紙價高
여러 사람 입에 이름 진동하였네. / 名字雷衆脣
보는 자는 반드시 다 절을 하면서 / 見者必加額
두 손 모아 감사하다 말을 하였네. / 叉手謝諄諄
그대에게 마침 작은 병이 있어서 / 屬汝有小痾
며칠 동안 병석에 앓아누웠지. / 數日臥床茵
중과 관원 앞 다투어 약 보내오고 / 僧官送藥餌
술에다가 음식을 가지고 왔지. / 酒食爭來陳
병문안을 하는 자가 날로 잇달아 / 問者日相續
위문하길 부모에게 하듯이 했지. / 存慰如其親
내 알았네. 재주를 사랑하는 맘 / 始知愛才心
오랑캐나 중국 모두 똑같다는 걸. / 乃與華夏均
나는 비록 *한유(韓愈)에게 부끄럽지만 / 我雖愧韓君
그댄 실로 *아매의 짝이로구나. / 汝實阿買倫
성상께서 두루두루 일 염려함에 / 聖人慮事周
작고 큰일 그 모두가 신묘도 하네. / 細大皆入神
글씨 재주 작은 거라 말하지 말라 / 無曰是小技
또한 이웃 오랑캐를 감동케 하네. / 亦可動蠻鄰
나의 시는 한 푼어치 값도 없음에 / 我詩不直錢
천양하려 하여도 할 수가 없네. / 揄揚竟無因
가을 창의 벌레 소리 화답을 하여 / 秋窓和蟲吟
애오라지 날짜만을 기록하노라. / 聊以記時辰
----------------
*관백(關白) : 일본에서 왕을 내세워 실질적인 정권을 잡았던 막부의 우두머리
*유구(琉球) : 유구국(琉球國 Ruuchuu-kuku ; 오키나와어)은 동중국해 남동부, 현재 일본 오키나와 현에 있었던 왕국이다
*현소(玄蘇) : 일본 승려 겐소(玄蘇 현소)
*차천로(車天輅) : 조선의 문신· 문인. 자는 복원(復元), 호는 오산(五山)· 난우(蘭우)· 귤실(橘室)· 청묘거사(淸妙居士). 송도(松都) 출신. 서경덕(徐敬德)의 문인.
1577년(선조10) 알성문과(謁聖文科)에 병과(丙科)로 급제, 1583년 문과중시(文科重試)에 을과(乙科)로 급제했다.
1589년 통신사(通信使) 황윤길(黃允吉)을 따라 일본에 다녀왔다.
명나라에 보내는 대부분의 외교문서를 담당, 문명이 명나라에까지 떨쳐 동방문사(東方文士)라는 칭호를 받았다.
교정청(校正廳)의 관직을 겸임했고, 광해군 때 봉상시 첨정(僉正)을 지냈다.
특히 한시(漢詩)에 뛰어나 한호(韓濩)의 글씨, 최립(崔岦)의 문장과 함께 송도삼절(松都三絶)이라 일컬어졌으며, 가사(歌辭)에 조예가 깊었고 글씨에도 뛰어났다
*모추자(毛錐子) : 붓의 별칭이다.
*홍무체(洪武筆) : 홍무는 명태조의 연호로, 그때 새로 나온 서체라는 뜻이다
*성주(聖主) : 학봉 선생이 선조를 일컬어 말함.
*한유(韓愈) : 대력 3년(768년)~장경 4년(824년), 중국 당(唐)을 대표하는 문장가 · 정치가 · 사상가이다.
당송 8대가(唐宋八大家)의 한 사람으로 자(字)는 퇴지(退之), 호는 창려(昌黎)이며 시호는 문공(文公)이다.
*아매(阿買) : 일본국(日本國)을 말한다.
옛날 일본국 국왕(國王)의 성이 아매씨(阿買氏)였으므로 이른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