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제학(大提學). 문형(文衡)
■ 대제학(大提學). 문형(文衡)
대제학은 정1품인 정승보다 낮은 정2품이지만 학문과 도덕이 뛰어나고 가문에도 문제가 없는 사람만이 오를 수 있는 관직이었기 때문에 대제학이 배출된 가문은 이를 크나큰 영예로 여겼고 세상에서도 그렇게 평가했습니다.
그 중에서도 문형(文衡)이라는 게 있는데 문형은 보통은 대제학(大提學)의 별칭으로 알려져 있으나 대제학이라도 문형의 칭호를 얻으려면 홍문관 대제학(弘文館大提學), 예문관 대제학(藝文館大提學)에 성균관 대사성(成均館大司成)이나 지성균관사(知成均館事)를 겸임해야만 했습니다.
문형의 자리는 당대의 관학계를 대표하는 자리였고 그야말로 최고의 영예로 여겨졌으며 조선 왕조 500년에 걸쳐 134명의 문형이 있었습니다.
문형이 되기 위해서는 첫 번째로 문과 출신으로 예문관 관원이 되기 위한 시험에 통과하거나 홍문록에 뽑혀야 했고, 두 번째로 호당(湖堂)을 거쳐야 했으며, 세 째로는 반드시 예문관 응교(應敎)와 양관의 제학(提學)을 역임한 사람이어야 했습니다.
응교와 제학 역시 자격이나 임용 규정이 매우 까다로워서 장차 문형이 될 만 하다고 여겨지는 사람이 임용되었습니다.
이 조건 뿐만 아니라 문형의 임용은 전임자가 후임자를 천거하면 이를 삼정승, 좌우찬성, 좌우참찬, 육조판서 등이 모여 권점(비밀투표)을 통해 결정했습니다.
문형이 되면 본인이 사임하지 않는 한 그 지위가 보장되었으며 죄를 짓거나 상을 당하더라도 죄가 풀리거나 상을 마친 뒤에는 다시 그 자리를 지킬 수가 있었습니다.
◈ 3명이상 대제학 가문을 배출한 가문
광산김씨(7명), 연안이씨 (7명), 전주이씨(7명), 안동김씨(6명), 달성김씨(6명), 의령남씨 (6명), 덕수이씨(5명), 풍양조씨(4명), 안동권씨(3명), 남양홍씨 (3명), 여흥민씨 (3명), 경주이씨(3명), 연일정씨 (3명), 해평윤씨(3명), 양주조씨(3명), 고령신씨(3명), 청풍김씨(3명), 해주오씨(3명) 등
문형(文衡)은 대제학(大提學)을 일컫는다.
고려 시대에 보문각· 우문관· 진현관에 둔 정2품 또는 종2품 벼슬이다.
조선 시대에 둔 홍문관과 예문관의 으뜸 벼슬이며 정2품으로 태종 1년(1401)에 대학사를 고친 것이다.
대제학은 지금의 장관급이고. 대제학이 있던 곳은 홍문관(弘文館)과 예문관(藝文館)이다.
홍문관(弘文館)은 조선시대 궁중의 경서(經書).사적(史籍)의 관리. 문한(文翰)의 처리 및 자문에 응하는 일을 맡아보던 관청으로 옥당(玉堂). 옥서(玉署)라고도 하며. 사헌부(司憲府) 사간원(司諫院)과 더불어 삼사(三司)라고 한다.
예문관(藝文館)은 조선시대에 칙령(勅令)과 교명(敎命)을 기록하는 일을 맡아보았으며 개국 초 고려의 관제에 따라 예문춘추관(藝文春秋館)으로 합쳐졌던 것을 1401년(태종)에 춘추관 을 분리하여 예문관으로 개편하였다.
넓게 말하면 홍문관은 학문을 연구하는 기관이고, 예문관은 왕명 등으로 나가는 문서를 만드는 기관이다.
대제학(大提學)은 정2품(正二品)의 관계이지만, 학문(學文)과 도덕(道德)이 뛰어나고, 가문(家門)에도 하자가 없는 석학(碩學), 석유(碩儒) 만이 오를 수 있는 지위로, 정승(政承) 3명과도 바꾸지 않는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학자(學者)와 인격자(人格者)로서의 최고 지위라 할 수 있어, 본인은 물론 일문(一門)의 큰 명예로 여기었다.
대제학(大提學) 후보 선정은 전임 대제학이 후보자를 천거하면 이를 3정승(三政承), 좌우찬성(左右贊成), 좌우참찬(左右參贊), 육조판서(六曹判書)가 모여 다수결로 정하게 된다.
대제학(大提學)의 임기는 본인 의사에 따라 결정하며, 종신직(終身職)이었다.
이와 같은 위상으로 볼 때, 관직 중에서 최고의 꽃이라 말할 수 있다.
또한 대제학(大提學)을 온 나라의 학문을 바르게 평가하는 저울 이라는 뜻으로,「문형(文衡)」이라고 평가되기도 한 대제학(大提學)을 학문의 권위가 높다고만 해서 오를 수 있는 관직은 아니었다.
원칙적으로 문과(文科)의 대과(大科) 급제자이면서도 임금의 특명을 받아 문신(文臣)들이 공부하던 호당(湖堂) 출신만 가능하였고, 또한 문형(文衡)의 별칭을 얻을 수 있는 사람은 한정되어 있었는데, 반듯이 홍문관대제학(弘文館大提學)과 예문관대제학(藝文館大提學) 및 성균관대사성(成均館大司成), 지성균관사(知成均館事)등, 나라 전체의 학문관련 3가지 최고 직위를 모두 겸직하는 경우에 한하였다.
문형(文衡)이란 이러듯 3관의 최고 책임자로서, 관학계(官學界)를 공식적으로 대표하는 직위 이므로 학자로서의 최고의 명예(名譽)로 여겼으며, 품계((品階)는 판서(判書)와 동등한 정2품(正二品) 이지만 3정승(三政承)이나, 육조판서(六曹判書) 보다도 높이 예우(禮遇)를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