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이씨의 유래와 역사’에서 잘못된 기술 – 1
■ ‘경주이씨의 유래와 역사’에서 잘못된 기술 – 1
[신라 6촌의 한 도읍이었던 진지촌의 내력을 기록하는 ‘외동에 관한 책’에 신라 6성에 대한 내용을 ‘경주이씨’ 씨족을 대표하여 유래와 역사를 정리해서 게재한다.] 고 하며 모 종친님께서 장문의 글을 올려 주셨습니다.
[‘경주이씨’ 씨족을 대표하여 유래와 역사를 정리해서 게재한다.] 고 하였는데 많은 자료를 수집하여 글을 정리하여 올리시느라 노고가 크셨으리라 짐작은 되지만 경주이씨 씨족을 대표하여 올린 글 치고는 잘못된 내용이 너무 많습니다.
몇 년 전 모 카페에 올라있는 이 글에 잘못 기술된 내용이 많아 지적하는 글을 올렸더니 얼마 후 원문과 지적하여 올린 글마저 삭제해 버렸습니다.
그러나 그 후 이 글이 벌써 몇몇 카페에 복사되어 올라져 있음을 알았습니다.
이 글이 복사되어 여러 카페에 그대로 전달되었기에 내용을 모르는 종친님들은 이 내용을 그대로 믿을 것으로 보여 잘못된 내용을 바르게 알려야겠다는 생각에 지적하여 다시 올립니다.
애를 써서 쓴 글이지만 후손들이 읽는 글이기에 잘못된 곳을 그대로 둘 수는 없어 이를 지적하여 수정하여 올립니다.
장문의 글이기 때문에 잘못 표기된 문장만을 【......... 】로 나타내고 잘못된 부분은 ▲ 표시 후에 아래에 소견)을 드립니다.
1. 【*시조의 36세손인 신라 9주(州) 수장(首長) 중의 한 사람이었던 소판공(蘇判公) 이거명(李居明)을 중시조(中始祖)로 하고 있다.】
▲ [시조의 36세손인...]
소견)
시조의 36세손인 ⇒ 시조의 원대손(遠代孫)인......
시조의 아들인 시조의 1세손 즉 2세부터 중시조이신 소판공 앞대까지의 약 900년간의 시조 계대 기록은 아직까지는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그동안 두 차례에 걸쳐 발견된 ‘28대로 된 실전세계’와 ‘35대로 된 실전세계’는 사실적이 아닌 잘못된 실전세계입니다.
‘35대로 된 실전세계’의 35대 계대를 적용하여 중시조 1세인 중시조님(소판공 이거명)을 ‘시조 36세’라고 칭하거나 ‘시조의 36세손’이라고 하는 것은 잘못 읽은 것입니다.
약 900년간의 계대를 전연 모르기 때문에 중시조님을 ‘시조의 원대손(遠代孫)’이라 합니다.
‘몇 세손(=대손)’으로 헤아려 읽는 방법은 조상과 후손 간 계대에서 맨 윗대 조상을 기준으로 하되 기준은 헤아리지 않고 기준다음 아랫대인 아들을 1로 읽고 다음 손자 등을 2. 3. 4...등으로 헤아려 읽은 수 뒤에 世孫(세손) 단위를 붙여 읽어야 합니다.
2. 【조선 말기에 이르러 *시조 이후 중시조까지의 실전(失傳) 세계(世系)를 찾아내어 전체의 계대가 규명되었다.】
소견)
'전체의 계대가 규명되었다?'
실전된 시조 이후 중시조까지 약 900년간의 계대를 ‘35대로 된 실전세계’를 찾아내어 계대를 규명했다고 하는 것 같습니다.
‘실전세계 35대’는 혹 1932년 분적종 합천이씨 임신대보에 처음 발굴되어 게재되었다는 ‘35대로 된 실전세계’가 아닙니까?
십중팔구 이것을 두고 말씀하시는 것 같은데 이 계보가 대종보에도 올라있는 ‘35대로 된 실전세계’입니다.
중앙화수회에서 조사 분석한 내용이 ‘실전세계의 고찰’이라는 논문으로 대종보(1987년도 간행) 총편에 게재되어 있습니다.
조사 결과 ‘35대로 된 실전 세계’는 여러 가지로 부정확하여 올바른 계대가 아니고 사실적이 아니라고 밝혔습니다.
1987년도에 중앙화수회에서 대종보를 발간할 때에 중앙화수회 성우 회장께서도 발간사를 쓸 때에 이에 대한 언급으로 ‘양 실전세계(28대. 35대 실전세계)는 정확한 고증이 없으므로 다만 참고로 올린다.’라고 했습니다.
이러함으로 아직까지 신라 초, 말 900년간의 계대는 전연 밝혀진 바가 없습니다.
대종보 총편의 ‘실전세계의 고찰’을 탐독하시면 그 내용을 알게 될 것입니다.
3. 【*약 2,182년 전(2008년 현재)인 기원전 117년 한 무제(漢武帝) 원수 6년 갑자년(甲子年)에 하늘로부터 진한(辰韓) 땅 표암봉(瓢巖峰)에 하강....】
소견)
약 2,182년 전 ⇒ 약 2,125년 전
2182년 전이 아니고 2,125년 전입니다.
왜냐하면 현재 2,008년 + 117년은 2,125년이 됩니다.
4. 【소판(蘇判)은 *신라의 성골(聖骨)이나 진골(眞骨) 귀족들만이...】
신라의 성골(聖骨)이나 ⇒ 삭제 하고 '소판(蘇判)은 진골(眞骨) 귀족들만이...'
소판은 진골(眞骨) 출신이 갖지만 성골(聖骨)은 임금이 되는 골품이기 때문에 소판 관직을 성골이 갖는다는 것은 잘못된 기술이다.
*참고
원래는 성골(聖骨)만이 왕이 될 자격이 있었으나, 선덕여왕 때가 되어 ‘성골’ 출신의 남자가 하나도 없게 되자, 진골 출신도 왕이 될 수 있게 되었다.
《삼국유사》는 이때의 상황을 "성골남진(聖骨男盡)"이라고 표현했다.
진흥왕의 직계(성골) 및 방계(진골)를 구별하기 위한 표현이라는 설도 있다.
태종 무렬왕(진골 출신)부터 성골이 없어진 것입니다.
‘경주이씨 대종보’의 기록에도 ‘蘇判(소판)은 惟眞骨受也(유진골수야)’라고 하였으니 ‘소판은 오직 진골(眞骨)이라야 받는다.’라고 소판공 행적에 기록하고 있기 때문에 ‘성골’이라는 말은 상관없는 말이라 삭제되어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