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조세수’는 헤아려 읽거나 말하지 맙시다. - 4
■ ‘시조세수’는 헤아려 읽거나 말하지 맙시다. - 4
아래 내용 때문에서라도 35대로 된 실전세계는 사실적이지 못한 계대임이 확싱합니다.
아래의 글은 ‘35대로 된 실전세계’에 게재된 시조 18세 '인흥'에 대한 행적 기록입니다.
【18세 인흥
字(자)는 和行(화행)이니 문장과 덕행이 있으나 벼슬길에 나서지 않았다.
처음에 산림 간에 은둔하여 좋은 종자와 나무를 구하는 현명한 처사로 도를 닦고 덕행을 쌓으니 배우는 사람들이 ‘도천 선생’이라 호칭하였다.
지증왕이 그 현명함을 듣고 4년에 선생을 내사 박사령 주사로 협률도위로 있을 때 임금에게 말하기를 우리 시조(始祖) 이래로 국호(國號)가 정하여 지지 않아 혹은 사라(斯羅)라고 하거나 혹은 신라(新羅)라고 하니 신(新)자는 덕업일신(德業日新- 덕업을 날로 새롭게 함)이요. 라(羅)자는 망라사방(網羅四方- 사방을 망라함)을 뜻하니 바른 것을 정하여 국호(國號)로 함이 어떠하겠느냐고 하였다.
신이 또 자고로 보건데 국가가 있는 사람들은 모두 황제를 칭하거나 왕을 칭하는데 우리는 나라를 세운지 20세(임금 대수)에 여태껏 지방 방언을 사용하고 존호도 정하지 않았으니 이제 신등(臣等)이 의논하고 정하여 올리니 임금이 이에 따라 나라 이름을 신라라 하였고 이로부터 시법(諡法- 시호諡號를 의논하여 정하던 방법)도 시작하였다.
公이 태위령. 상서총재. 통정사. 태사. 태부. 대사령하고 명년에 상중에 입는 상복 제도를 임금에게 고치도록 하였다.
왕이 臨夢(임몽)에 태자와 公에게 말하기를 내가 죽은 후에 태자가 유약하니 주공지사(周公之事)로 태자를 부탁하고 태자사부(太子師傅)로 삼았다.
태자가 왕에 올라 법흥왕이니 공이 임금을 대신하여 왕의 일을 보고 백관의 공복례 제도를 시행하였다.
당시 삼한(三韓) 여러 나라가 듣고 크게 놀라 군자(君子)의 나라라 하였다.
공이 30여년 보국(輔國- 나라 일을 도움)하고 현명한 재상으로 밝은 정치를 하고 나이 들어 퇴사(退仕- 벼슬을 그만 둠)하니 그를 일러 제자가 효제충신(孝悌忠信)운운하며 삼강오륜법(三綱五倫法)의 글을 썼다.
문집 20권이 집안에 전해지고 졸하니 향년이 73이라,
법흥왕 23년에 증태사령 광록대부 평림후하고 시 문렬공 하다.
태종무렬왕 때 장혜왕(章惠王)으로 추봉(追封- 관위를 추가로 내림)하고 찬(讚- 칭찬하는 글)하여 말하였다.
[기충기충(其忠其忠)이여 백세충(百歲忠)이요. 인흥인흥(仁興仁興)이여 만세인흥(萬歲仁興)이라,]
- 충신 충신 백세의 충신이요. 인흥 인흥이여. 만세의 인흥이라.
장자 황(木+廣)과 차자 낙(樂)을 두었다.】
아래의 글은 앞서 올린 글의 내용과 비슷한 내용의 글입니다.
◈ [천협률도위(遷協律都尉)하야 상언왈(上言曰) 아시조이래(我始祖以來)로 국호미정(國號未定)하야 혹칭 사라(或稱斯羅)하고 혹칭 신라(或稱新羅)하니 *신자(新者)는 ‘덕업일신(德業日新)’이요. *라자(羅者)는 ‘망라사방(網羅四方)’을 뜻하니...] - (*新者 ⟹ 新字 *羅者 ⟹ 羅字)
- 협률도위(協律都尉)로 있을 때 임금에게 말하기를 우리 시조(始祖)이래로 국호(國號)가 정하여 지지 않아 혹은 사라(斯羅)라고 하거나 혹은 신라(新羅)라고 하니 신(新)자는 덕업일신(德業日新- 덕업을 날로 새롭게 함)이요. 라(羅)자는 망라사방(網羅四方- 사방을 망라함)을 뜻하니 바른 것을 정하여 국호(國號)로 함이 어떠하겠느냐고 하였다.
간단히 줄여 말하면 *신자(新者)는 ‘덕업일신(德業日新)’이요. *라자(羅者)는 ‘망라사방(網羅四方)’을 뜻하니 이는 곧 ‘왕의 덕업이 날로 새롭게 되어 사방을 망라한다.’는 뜻으로 신(新)자와 라(羅)자를 각기 취하여 국호(國號)로 하면 어떠하겠느냐? 것이었다.(*新者 ⟹ 新字 *羅者 ⟹ 羅字)
◈ [자고로 보건데 국가가 있는 사람들은 모두 황제를 칭하거나 왕을 칭하는데 우리는 나라를 세운지 20세(임금 대수)에 여태껏 지방 방언을 사용하고 존호도 정하지 않았으니 이제 신등(臣等)이 의논하고 정하여 올리니 임금이 이에 따라 나라 이름을 신라라 하였고 이로부터 시법(諡法- 시호諡號를 의논하여 정하던 방법)도 시작하였다.
국호는 역사서에 따라 사로(斯盧)· 사라(斯羅)· 서나(徐那)· 서나벌(徐那伐)· 서야(徐耶)· 서야벌(徐耶伐)· 서라(徐羅)· 서라벌(徐羅伐)· 서벌(徐伐) 등으로 표기되어 있는데, 그 뜻은 동방의 나라, 새로운 나라, 또는 성스러운 곳이라는 ‘수풀’의 의미로 해석하고 있다.]
503년 지증왕 4년에 여러 나라 이름 중에서 ‘신라’를 국호로 확정하였다.
◈[도천선생(道千先生)께서 왕께 말씀을 올리기를
“아시조이래(我始祖以來)로 국호미정(國號未定)하야 혹칭 사라(或稱斯羅)하고 혹칭 신라(或稱新羅)하니 *신자(新者)는 ‘덕업일신(德業日新)’이요. *라자(羅者)는 ‘망라사방(網羅四方)’을 뜻하니...” 운운하는 기록이 있다. (*新者 ⟹ 新字 *羅者 ⟹ 羅字)
간단히 줄여 말하면 아래의 내용이다.
[*신자(新者)는 ‘덕업일신(德業日新)’이요. *라자(羅者)는 ‘망라사방(網羅四方)’을 뜻하니 이는 곧 ‘왕의 덕업이 날로 새롭게 되어 사방을 망라한다.’는 뜻으로 신(新) 자와 라(羅) 자를 각기 취하여 국호(國號)로 하였다.] (*新者 ⟹ 新字 *羅者 ⟹ 羅字)
‘사방을 망라한다.’는 말은 ‘삼국통일’을 의미한다는 말도 있다.
국호는 역사서에 따라 사로(斯盧)· 사라(斯羅)· 서나(徐那)· 서나벌(徐那伐)· 서야(徐耶)· 서야벌(徐耶伐)· 서라(徐羅)· 서라벌(徐羅伐)· 서벌(徐伐) 등으로 표기되어 있는데, 그 뜻은 동방의 나라, 새로운 나라, 또는 성스러운 곳이라는 ‘수풀’의 의미로 해석하고 있다.
503년(지증왕 4)에 그 중에서 신라로 확정하였다.]
◈ [삼국사기 권제4, 2장 앞쪽, 신라본기 4 지증마립간] 10월 기록에 위 [실전세계의 도천 선생 기록]과 같은 내용이 아래의 글이다.
[(四年 冬十月 群臣上言 始祖創業已來 國名未定 或稱斯羅 或稱斯盧 或言新羅
臣等以爲新者德業日新 羅者網羅四方之義 則其爲國號 宜矣 又觀自古有國家者
皆稱帝稱王 自我始祖立國 至今二十二世 但稱方言 未正尊號
今群臣一意 謹上號新羅國王 王從之)
- 4년 겨울 10월, 여러 신하들이 임금에게 아뢰기를,
“始祖(시조. 신라)가 나라를 창건한 이래로 나라 이름을 아직 정하지 못한 채 사라라 부르기도 하고, 사로라고 부르기도 하였으며 또는 신라라 부르기도 하였습니다.
저희들은 新은 덕업이 나날이 새로워진다는 뜻이요, 羅는 사방을 모두 덮는다는 뜻이므로 新羅를 나라 이름으로 삼는 것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예로부터 나라의 군주를 살펴보면, 모두 帝나 王으로 칭호를 삼았는데, 우리 始祖(신라. 거세)나라를 창건하고 지금까지 22대가 되도록 오직 방언으로 왕호를 삼았을 뿐 아직도 존귀한 칭호를 정하지 못했으니, 이제 여러 신하들이 한 뜻으로 삼가 新羅國王(신라 국왕) 이라는 칭호를 올립니다.” 하니, 임금이 이를 따랐다.]
과연 위 글의 내용들이 우리 원대 조상님의 행적과 공적이라면 더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일일 것입니다.
그것이 실제로 우리 조상님의 공적이면 위대한 업적을 쌓은 것이니 후손으로서는 자랑스럽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닌 것은 아닌 것입니다.
이러한 내용을 어찌 믿을 수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