僉樞公十四世孫橘山公(첨추공 14세손 귤산공) - 1
■ 僉樞公十四世孫橘山公(첨추공 14세손 귤산공) - 1
우리 경주이씨는 필자가 족보와 문헌 그리고 비문에 남긴 ‘세. 대. 세손. 대손. 세조. 대조’의 용례 61개를 발췌하여 계대를 비교하여 보았더니 58개가 ‘세=대’로 같은 뜻으로 읽는 ‘동의론’으로 기록하고 2개가 ‘세=세손’으로 같은 뜻으로 읽는 ‘이의론’으로 쓰였고 1개는 2세 이상 차이가 나는 잘못 표기한 내용으로 밝혀내었습니다.
귤산공(橘山公 - 휘 유원)이 月城君襄平公神道碑銘(월성군 양평공 신도비명)에 자신을 僉樞公十四世孫(첨추공 14세손)이라고 가록하고 있습니다.
‘동의론’으로 ‘몇 세손(=대손)’을 따져보면 분명히 첨추공의 13세손(=13대손)이라야 하는데 자신을 첨추공의 14세손이라고 기록하였습니다.
어떻게 귤산공(휘 유원)이 첨추공(휘 숭수)의 13세손을 14세손이라고 나타내었는가?
기록에 보면 아래의 글과 같이 씌어 있습니다.
【대종보 P151 月城君襄平公神道碑銘(월성군 양평공 신도비명)
- 岳溪 洪貴達撰(악계 홍귀달찬)
左贊成襄平月城君- 諱鐵堅- 神道碑(좌찬성 양평 월성군-휘 철견- 신도비)
................
*僉樞公十四世孫咸鏡道觀察使裕元識(첨추공 14세손 함경도 관찰사 유원 지) 】
▲[*僉樞公十四世孫咸鏡道觀察使裕元識(첨추공 14세손 함경도 관찰사 유원 지) ]
P152 追記(추기) 종 8열
[僉樞公十四世孫(첨추공 14세손] - ‘원문’ 기록
P155 追記譯文(추기 역문)
[僉樞公十四世孫(첨추공 14세손)] - ‘역문’ 기록
소견)
원문에 ‘十四世孫(14세손)’으로, 역문에 ‘十四世孫(14세손)’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귤산공(귤산공. 휘 유원)께서 양평공 신도비문에 자신을 [僉樞公十四世孫(첨추공 14세손)]으로 기록하였습니다.
계대를 보면 첨추공(僉樞公. 휘 숭수崇壽)은 중시조 21世이고 귤산공(橘山公. 휘 유원裕元)은 중시조 34세입니다.
아래와 같이 계대를 나타낼 수 있습니다.
○ 상서공파 첨추공(휘 숭수) ~ 귤산공(휘 유원)의 계대
①21세 → ②22세 → ③23세 → ④24세 → ⑤25세 → ⑥26세 → ⑦27세 →
첨추공......판관공.....찬성공......정헌공......백사공.....성천공.....시술......
숭수.........성무.........예신.........몽량.........항복........정남........시술...........
1세(대).....2세(대).....3세(대).....4세(대).....5세(대).....6세(대)....7세(대).......
(기준).......1세손.......2세손........3세손.......4세손.......5세손.......6세손.........
⑧28세 → ⑨29세 → ⑩30세 → ⑪31세 → ⑫32세 → ⑬33세 → ⑭34세
구천공......부사공..................................................동천공......귤산공
세필.........정좌........종주..........경관........석규.........계조.........유원
8세(대).....9세(대)....10세(대).....11세(대)..12세(대)...13세(대)....14세(대)
7세손........8세손.......9세손........10세손....11세손......12세손......13세손
중시조 34세 귤산공(휘 유원)은 첨추공(휘 숭수) 14세(=14대)이나 ‘첨추공의 13세손(=13대손)’으로 읽고 말합니다..
*우리 경주이씨 조상님들의 비문. 문헌의 기록을 보면 ‘세=대. 세조=대조. 세손=대손’ 으로 등호( = ) 좌우의 용어는 ‘같은 뜻’으로 읽었습니다.
대종보 총편에 게재된 구보서 백사선생 동종계서. 시조 유허비. 비각중수기. 선영묘단 비문. 사단 비문. ○○공(선생) 전. 묘비문. 전기. 추모비명. 행록. 묘지명. 신도비명. 묘표음기, 묘갈명. 묘단비명. 유허비명. 제단비명. 행장 등. 기타 문헌 등에서 용례 61개를 발췌하여 계대와 비교 조사하였더니 2개는 이의론. 1개는 2세 차이의 오타. 58개의 용례는 ‘동의론’으로 읽고 있음을 밝혔습니다.
이 중 이의론의 2개 용례가 위 귤산공의 첨추공 14세손으로 해당 용례입니다.
‘동의론’으로 ‘몇 세손(世孫)’ 읽는 방법으로 따져보면 귤산공(휘 유원)은 첨추공(휘 숭수)의 13세손(=13대손)이 됩니다.
그러나 귤산공(휘 유원) 자신이 쓴 기록에는 자신을 ‘첨추공 十四世孫(14세손)’으로 기록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세와 대에 대한 기록을 ‘대종보’ 기록에서 24건. 다른 문헌 기록에서 37건을 가려내어 총 61건을 계대와 비교 조사하니 2건만 ‘이의론’으로 읽고 1건은 ‘동의’도 ‘이의’도 아닌 2세 차이가 나도록 예외로 기록한 외에 총 58건이 ‘동의론’로 기록하였음을 밝혔습니다.
이 2건의 이의론의 용례가 귤산공(휘 유원)께서 쓰신 글에만 있는 내용입니다.
[첨추공 14세손 함경도관찰사 유원지(僉樞公十四世孫咸鏡道觀察使裕元識)]라고 한 기록입니다.
작년인가 대종보에서 밝혀낸 내용으로 ‘14세를 14세손’으로 읽는 귤산공의 글을 보고 아래와 같은 내용의 글을 모 카페에 올린 적도 있습니다.
[첫째가 大宗譜 P151 月城君襄平公神道碑銘- 岳溪 洪貴達撰 P152 追記(대종보 P151 월성군양평공신도비명
- 악계 홍귀달찬 P152 추기) 맨 마지막 종 8열의 ‘僉樞公十四世孫咸鏡道觀察使裕元識(첨추공 14세손 함경도관찰사 유원지)’이라는 기록이다.
계대를 이어보면 13세손(=13대손)이 분명한데 '14세손'이라고 기록하고 있는데 귤산공께서 다른 곳에는 내용을 바르게 기록하면서 이 추기 기록만 틀리게 기록한 것은 의외이다.] 라고 글을 올렸습니다.
(차회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