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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제사의 올바른 의식 - 1

녹전 이이록 2019. 9. 5. 10:27

기제사의 올바른 의식 - 1



daum cafe ‘광산김씨 허주공파 첨정공 종중에 올라 있는 좋은 글입니다.


도움이 될까하여 복사하여 올립니다.


1. 제사 일시 및 재계(齋戒)


재계(齋戒) - 1(하루만 재계한다.)


*제사 시간 : 돌아가신 날 새벽 1~ 그날 밤 12 안에 제사를 모신다.


質明奉主就位(질명 봉주취위) - *질명(質明) 때 신주를 받들어 모시고 신위 자리에 나온다.


質明而始行事(질명 이시행사) - 질명(質明)에 행사를 시작한다.


*晏朝而退(안조 이퇴) - 늦은 아침에 물린다.


孔子取之(공자취지) = 考證(고증) 四禮(사례) 卷八(권팔) () 二十(20)


[* 질명(質明)


이른 새벽 날이 밝으려 할 무렵 어둑새벽 날이 샐 무렵 국어사전


새벽이 되어 날이 밝으려 할 무렵이라는 뜻으로 질명(質明)이라 함.]


[* 제사 시간 : 돌아가신 날 새벽 1~ 그날 밤 12 안에 제사를 모신다.


* 晏朝而退(안조 이퇴) - 늦은 아침에 물린다.


소견)


보통 제사 모시는 시간은 기일 오전 0시 이후부터 오후 12시 이전의 밤중에 제사를 모십니다.


그러면 [*제사 시간 : 돌아가신 날 새벽 1~ 그날 밤 12안에 제사를 모신다.]라는 말이 맞는 말인데 제사상을 *晏朝而退(안조 이퇴) - 늦은 아침에 물린다. 라고 하였습니다.


늦은 아침은 오전 9~10시경이니 오전 0시 이후의 시간과 오전 9~10시는 두 설명에서 시간 차이가 많이 나 이해에 혼란이 있습니다.]


1)


축문에 顯考諱日復臨(현고휘일부 림) : 돌아가신 날이 다시 돌아오다.


(사계 할아버지는 돌아가신 날 새벽 3시에 의정공 할아버지는 돌아가신 날 오후 6시에 제사 를 모심)


2) 성균관 석전대제 시각 ; 用丑一刻(용 축일각) : 새벽 115분에 행사.


3) 大唐開元禮(대당 개원례) ; 未明(미명. 날 샐 무렵)


영정(影幀)이나 사진(寫眞)모시고 지낼 때는 지방(紙榜)을 써서 그 앞에 모시고, 影幀(영정)이나 寫眞(사진)을 뒤에 모시고 지내야 한다.


()는 생시의 모양인 사진이나 영정에 지내는 것이 아니고 신에게 제사를 지내기 때문이다.


2. 神主(신주)紙榜(지방)*開讀(문을 여는 것)


點燭(점촉) ; 촛불을 켜고, 대문을 열고 난 후에 신주를 연다.


[*開讀(개독) : 開讀(개독)은 문을 여는 것이 아닙니다.


- 개독(開櫝)은 제사 때 사당에 모셔두었던 위패의 독을 개봉한다는 뜻입니다.]


3. 降神(강신) ; 신을 모시는 것.


주인이 향로 위에 향을 세 번 사르고 再拜(재배)- 두 번 절하고, 주인이 모사기의 띄()위에 降神盞(강신 잔)으로 세 번에 나누어 술을 따르고 再拜(재배)한다.

 

@ 降神盞(강신 잔)은 제상 위의 잔반(盞盤)을 쓰지 않고, 별도로 강신 잔을 구비하여 주가상 (酒架床)준비 하였다가 강신 잔으로 사용하여야 한다.


*좨주(祭酒) : 헌관(獻官)이 모사기(茅沙器)에 술을 세 번 지우고 올리는 근거.


是祭酒 蓋古者飮食必祭, 今以鬼神自不能祭, 故代之祭也 = 考證 家禮 四時祭 降神

(시제주 개고자 음식 필제, 금이 귀신 자불능제, 고대지제야 = 고증 가례 사시제 강신)


- 좨주하는 뜻은 옛날 사람들은 음식을 먹을 때 반드시 高矢禮(고시례)를 하고 먹었는데 지금 조상신이 스스로 제사(고시례)를 지낼 수 없어서 제사를 받드는 장자손이 대리로 좨주하는 것이다. = 고증 주자가례의 四時祭 강신에 기록됨.


[*좨주(祭酒)] 제주(祭酒)

- 좨주(祭酒)제주(祭酒)로 읽는 것이 바릅니다.


(인용)


좨주(祭酒)란 본래 수석(首席)이라는 뜻을 지닌다.

옛날에 잔치를 열 때는 나이가 많고 덕망이 높은 사람이 맨 먼저 술을 들어 땅에 제사 지냈기 때문에 그들을 좨주(祭酒)라 불렀다.

그 후 이 존경스러운 칭호를 관직명으로 사용하게 되었다.

좨주이름이 붙은 관직으로는 참군좨주(參軍祭酒), 문학좨주(文學祭酒), 학관좨주(學官祭酒) 등이 있는데 이들은 모두 해당 관직 중 나이가 많고 덕망이 높은 자를 예우하는 직위였다.

조선시대에는 성균관의 종3품 관직. 성균관유생들의 유학교육을 담당하는 관직으로 좨주(祭酒)라고 하였다 .

고려 말 1369(공민왕 18) 성균관의 좨주(祭酒, 3) 1인을 사성으로 개칭되었으나, 조선건국 직후에 좨주로 환원, 설치되었다가 1401(태종 1) ’사성으로 개칭되었다.]


모사기(茅沙器) :


부모님 영혼이 在於潔土潔草中(재어결토 결초중 청결한 흙과 깨끗한 풀 속에 계시다.)하여 茅沙器(모사기)를 사용함이며 깨끗한 모래와 띠의 묶음(띠 풀)을 한 뼘 정도를 잘라 가운데를 붉은 실로 묶어서 모래에 꽂거나, 청솔가지를 모래에 꽂기도 한다.


4. 참신(參神);


主人(주인)과 남자의 참례자들은 쪽에서 항렬(行列)순으로 앞 열에서부터 순서대로 北向(북향)하여 再拜(재배) 한다.


主婦(주부)와 여자 참레자들도 西쪽에서 항렬(行列)순으로 앞 열에서부터 순서대로 北向(북향)하여 四拜(4)한다.


5. 진찬(進饌) ;


鼎俎奇而, 籩豆偶, 陰陽之義也, (정조기이, 변두우, 음양지의야)

- 솥과 도마는 홀수로, 대나무 그릇과 목기는 짝수로 하는 것은 음양의 이치이다.


鼎俎之實以, 天産爲主而, 天産陽屬, 故其數奇.(정조지실이, 천산위주이, 천산양속, 고기수기).

- 솥과 도마에 채우는 것은 天産(천산. 움직이는 것)을 주로 담고 天産(천산)()에 속하므로 그 그릇의 숫자는 홀수로 한다.

豆之實以,地産爲主而,地産陰屬,故其數偶據, 此魚肉當用奇數,果蔬當用偶數.

( 두지실이, 지산위주이, 지산음속, 고기수우거, 차어육당용기수, 과소당용우수).

- 대나무 그릇과 목기에는 地産(지산)을 주로 담고 地産(지산)()에 속하므로 그 목기의 숫자를 짝수로 한다. <果實(과실)의 숫자는 무관함>


= 考證 沙溪全書 33喪禮備要 18虞祭 =(= 고증 사계전서 33권 상례비요 18쪽 우제 =)

(), (). ()()인고로 벼슬에 따라 3(3), 5, 7, 9탕을 모두 뚜껑을 덮어서 홀수로 올리고. 果實(과실)은 접시를 짝수로 쓴다.


()肉脯(육포. 사슴 포)魚脯(어포. 대구 포)神位(신위)()대로 요리하여 머리가 東向(동향)하여 등이 위로 가도록 엎어서 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