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제사의 올바른 의식 - 1
■ 기제사의 올바른 의식 - 1
daum cafe ‘광산김씨 허주공파 첨정공 종중’에 올라 있는 좋은 글입니다.
도움이 될까하여 복사하여 올립니다.
1. 제사 일시 및 재계(齋戒)
재계(齋戒) - 1日 (하루만 재계한다.)
*제사 시간 : 돌아가신 날 새벽 1시 ~ 그날 밤 12시 안에 제사를 모신다.
質明奉主就位(질명 봉주취위) - *질명(質明) 때 신주를 받들어 모시고 신위 자리에 나온다.
質明而始行事(질명 이시행사) - 질명(質明)에 행사를 시작한다.
*晏朝而退(안조 이퇴) - 늦은 아침에 물린다.
孔子取之(공자취지) = 考證(고증) 四禮(사례) 卷八(권팔) 祭(제) 二十(20쪽)
▲[* 질명(質明)
① 이른 새벽 ② 날이 밝으려 할 무렵 ③ 어둑새벽 ④ 날이 샐 무렵 – 국어사전
“새벽이 되어 날이 밝으려 할 무렵”이라는 뜻으로 질명(質明)이라 함.]
▲[* 제사 시간 : 돌아가신 날 새벽 1시 ~ 그날 밤 12시 안에 제사를 모신다.
* 晏朝而退(안조 이퇴) - 늦은 아침에 물린다.
소견)
보통 제사 모시는 시간은 기일 오전 0시 이후부터 오후 12시 이전의 밤중에 제사를 모십니다.
그러면 [*제사 시간 : 돌아가신 날 새벽 1시 ~ 그날 밤 12시 안에 제사를 모신다.]라는 말이 맞는 말인데 제사상을 *晏朝而退(안조 이퇴) - 늦은 아침에 물린다. 라고 하였습니다.
늦은 아침은 오전 9~10시경이니 오전 0시 이후의 시간과 오전 9~10시는 두 설명에서 시간 차이가 많이 나 이해에 혼란이 있습니다.]
例 1)
축문에 顯考諱日復臨(현고휘일부 림) : 돌아가신 날이 다시 돌아오다.
(사계 할아버지는 돌아가신 날 새벽 3시에 의정공 할아버지는 돌아가신 날 오후 6시에 제사 를 모심)
例 2) 성균관 석전대제 시각 ; 用丑一刻(용 축일각) : 새벽 1시 15분에 행사.
例 3) 大唐開元禮(대당 개원례) ; 未明(미명. 날 샐 무렵)
영정(影幀)이나 사진(寫眞)을 모시고 지낼 때는 지방(紙榜)을 써서 그 앞에 모시고, 影幀(영정)이나 寫眞(사진)을 뒤에 모시고 지내야 한다.
‘祭(제)는 생시의 모양인 사진이나 영정에 지내는 것이 아니고 신에게 제사를 지내기 때문이다.
2. 神主(신주)나 紙榜(지방)의 *開讀(문을 여는 것)
點燭(점촉) ; 촛불을 켜고, 대문을 열고 난 후에 신주를 연다.
▲[*開讀(개독) : 開讀(개독)은 문을 여는 것이 아닙니다.
- 개독(開櫝)은 제사 때 사당에 모셔두었던 위패의 독을 개봉한다는 뜻입니다.]
주인이 향로 위에 향을 세 번 사르고 再拜(재배)- 두 번 절하고, 주인이 모사기의 띄(띠 茅모)위에 降神盞(강신 잔)으로 세 번에 나누어 술을 따르고 再拜(재배)한다.
@ 降神盞(강신 잔)은 제상 위의 잔반(盞盤)을 쓰지 않고, 별도로 강신 잔을 구비하여 주가상 (酒架床)에 준비 하였다가 강신 잔으로 사용하여야 한다.
*좨주(祭酒) : 헌관(獻官)이 모사기(茅沙器)에 술을 세 번 지우고 올리는 근거.
是祭酒 蓋古者飮食必祭, 今以鬼神自不能祭, 故代之祭也 = 考證 家禮 四時祭 降神
(시제주 개고자 음식 필제, 금이 귀신 자불능제, 고대지제야 = 고증 가례 사시제 강신)
- 좨주하는 뜻은 옛날 사람들은 음식을 먹을 때 반드시 高矢禮(고시례)를 하고 먹었는데 지금 조상신이 스스로 제사(고시례)를 지낼 수 없어서 제사를 받드는 장자손이 대리로 좨주하는 것이다. = 고증 주자가례의 四時祭 강신에 기록됨.
▲[*좨주(祭酒)] ⇒ 제주(祭酒)
- 좨주(祭酒)는 제주(祭酒)로 읽는 것이 바릅니다.
(인용)
좨주(祭酒)란 본래 수석(首席)이라는 뜻을 지닌다.
옛날에 잔치를 열 때는 나이가 많고 덕망이 높은 사람이 맨 먼저 술을 들어 땅에 제사 지냈기 때문에 그들을 좨주(祭酒)라 불렀다.
그 후 이 존경스러운 칭호를 관직명으로 사용하게 되었다.
’좨주‘ 이름이 붙은 관직으로는 참군좨주(參軍祭酒), 문학좨주(文學祭酒), 학관좨주(學官祭酒) 등이 있는데 이들은 모두 해당 관직 중 나이가 많고 덕망이 높은 자를 예우하는 직위였다.
조선시대에는 성균관의 종3품 관직. 성균관유생들의 유학교육을 담당하는 관직으로 좨주(祭酒)라고 하였다 .
고려 말 1369년(공민왕 18) 성균관의 좨주(祭酒, 종3품) 1인을 ’사성‘으로 개칭되었으나, 조선건국 직후에 ’좨주‘로 환원, 설치되었다가 1401년(태종 1) ’사성‘으로 개칭되었다.]
◆ 모사기(茅沙器) :
부모님 영혼이 在於潔土潔草中(재어결토 결초중 – 청결한 흙과 깨끗한 풀 속에 계시다.)하여 茅沙器(모사기)를 사용함이며 깨끗한 모래와 띠의 묶음(띠 풀)을 한 뼘 정도를 잘라 가운데를 붉은 실로 묶어서 모래에 꽂거나, 청솔가지를 모래에 꽂기도 한다.
主人(주인)과 남자의 참례자들은 東쪽에서 항렬(行列)순으로 앞 열에서부터 순서대로 北向(북향)하여 再拜(재배) 한다.
主婦(주부)와 여자 참레자들도 西쪽에서 항렬(行列)순으로 앞 열에서부터 순서대로 北向(북향)하여 四拜(4배)한다.
5. 진찬(進饌) ;
鼎俎奇而, 籩豆偶, 陰陽之義也, (정조기이, 변두우, 음양지의야)
- 솥과 도마는 홀수로, 대나무 그릇과 목기는 짝수로 하는 것은 음양의 이치이다.
鼎俎之實以, 天産爲主而, 天産陽屬, 故其數奇.(정조지실이, 천산위주이, 천산양속, 고기수기).
- 솥과 도마에 채우는 것은 天産(천산. 움직이는 것)을 주로 담고 天産(천산)은 陽(양)에 속하므로 그 그릇의 숫자는 홀수로 한다.
籩豆之實以,地産爲主而,地産陰屬,故其數偶據, 此魚肉當用奇數,果蔬當用偶數.
(변 두지실이, 지산위주이, 지산음속, 고기수우거, 차어육당용기수, 과소당용우수).
- 대나무 그릇과 목기에는 地産(지산)을 주로 담고 地産(지산)은 陰(음)에 속하므로 그 목기의 숫자를 짝수로 한다. <果實(과실)의 숫자는 무관함>
= 考證 沙溪全書 33권 喪禮備要 18쪽 虞祭 =(= 고증 사계전서 33권 상례비요 18쪽 우제 =)
魚(어), 肉(육). 湯(탕)은 陽(양)인고로 벼슬에 따라 3湯(3탕), 5탕, 7탕, 9탕을 모두 뚜껑을 덮어서 홀수로 올리고. 果實(과실)은 접시를 짝수로 쓴다.
포(脯)는 肉脯(육포. 사슴 포)와 魚脯(어포. 대구 포)를 神位(신위)의 數(수)대로 요리하여 머리가 東向(동향)하여 등이 위로 가도록 엎어서 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