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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헌에 기록된 경주이씨 인물(이제현) - 16

녹전 이이록 2018. 7. 4. 09:07

고려사절요. 동문선 등 문헌에 기록된 경주이씨 인물(이제현) - 16


고려사절요. 동문선 등 문헌에 기록되어 있는 조상님들의 행적을 공과를 떠나서 내용 그대로 올립니다.


해당 조상님 외에 기록 내용 중에 경주이씨 조상님의 휘가 있으면 큰 글자체로 나타내고 관계를 약술합니다.


이제현(李齊賢) - 7


겨울 10월 초하루 신축 일에 일신이 곧 죄를 도당에게 뒤집어씌우고, 스스로 면하고자 하여 밤에 최화상(崔和尙)과 함께 입직하였다가 새벽에 화상에게 말하기를,


공이 차고 있는 칼이 매우 좋으니 한 번 봅시다." 하니, 화상이 말하기를,


이 칼은 사람을 참으로 많이 죽였소." 하고, 곧 빼어서 일신에게 주니, 일신이 그 칼을 받아들고는 화상을 목 베었다.


왕에게 친히 나와서 적을 잡으라고 권하였다.


왕이 의심하고 승낙하지 않으니, 일신이 청하면서 말하기를,


우두머리 없이 일이 성사되는 것이 어디 있습니까." 하므로, 왕이 부득이 칼을 차고 십자(十字)거리에 나왔더니, 백관들이 비로소 모여들었다.


장승량(張升亮) 89명을 체포하여 목 베고, 거리에 그 머리를 내걸며, 천기(天起)를 옥에 가두고, 그 아들 총랑(摠郞)인 명도(明道)를 목 베었다.


 송서(宋瑞)를 우정승으로, 조일신(趙日新)을 좌정승 판군부감찰사(左政丞判軍簿監察事), 홍언박(洪彦博)을 판삼사사로, 유탁(柳濯)ㆍ정을보(鄭乙輔)ㆍ조유(趙瑜)를 찬성사로, 김보(金普)ㆍ김일봉(金逸逢)ㆍ최천택(崔天澤)을 평리로, 강득룡(姜得龍)ㆍ홍원철(洪元哲)을 각각 삼사우좌사로, 안진(安震)을 정당문학으로, 김신(金信)을 지도첨의사사로, 강지연(姜之衍)을 첨의평리상의로, 한가귀(韓可貴)를 판개성부사(判開城府事), 유진(兪眞)을 밀직사(密直使), 강천유(姜千裕)를 지밀직사사로, 고충절(高忠節)ㆍ이성서(李成瑞)ㆍ황순(黃順)을 동지밀직사사로, 김귀년(金龜年)을 밀직부사상의로, 이종(李宗)ㆍ홍개도(洪開道)ㆍ손불영(孫佛永)을 밀직부사로, 이제(李濟)를 밀직제학으로 삼았다.


계묘일에 왕이 단양대군(丹陽大君)의 집으로 이어(移御)하였는데, 옮겨 가는 도중에 고라리(高羅里)를 지나갈 때 일신이 말 위에서 왕과 대비와 공주에게 술을 바쳤다.


이때 일신이 난을 일으켜 내외에 호령하니, 조정 신하들이 두려워하여 입을 다물고 한 마디의 말도 하는 자가 없었다.


왕이 전 좌사(左使) 이인복(李仁復)을 몰래 불러 이르기를,


일이 이 지경에 이르렀으니 어찌하면 좋겠는가." 하니 이인복이 대답하여 아뢰기를,


신하된 자로서 감히 난을 일으킨 자에 대하여는 본시 떳떳한 형벌이 있습니다.


하물며 지금 천조(天朝)가 당당하여 법령이 밝은데 만일 어물어물 결단을 내리지 못하면 신이 생각하기에 상왕(上王)에게 미칠까 두렵습니다." 하니,

왕이 드디어 일신을 제거할 것을 결의하고, 갑진일에 행성에 거둥하여 기로 등을 불러 밀의하며, 다음날에 다시 행성에 거둥하여 김첨수(金添守)에게 명하여 일신을 잡아오게 하고, 행성의 문 밖에 끌어내어 목 베었으며, 그의 친당 정을보(鄭乙輔), 이권(李權), 나영걸(羅英傑), 고충절(高忠節), 이종(李宗), 이군상(李君常), 박희(朴曦), 채하로(蔡河老) 218명을 옥에 가두었다.


적당 조파회(趙波廻)는 멀리 도망가 숨었다가 그의 늙은 어머니가 옥에 갇혔다는 말을 듣고 자수하여 왔는데 목 베었다.


이때 여러 날 계속해 흐리며 침침하였는데, 일신을 목 베자 활짝 개었다.


이제현(李齊賢)을 우정승으로, 조익청(曹益淸)을 좌정승으로, 유탁(柳濯)을 판삼사사(判三司事), 홍언박(洪彦博)ㆍ김승택(金承澤)을 찬성사로, 조유(趙瑜)를 도첨의평리로, 이공수(李公遂)를 삼사우사로, 문백(文伯)ㆍ김광현(金光鉉)을 동지밀직사사로, 김용(金鏞)ㆍ최원(崔源)ㆍ박수년(朴壽年)을 밀직부사로, 안보(安輔)를 밀직제학으로 삼았다. 홍탁(洪鐸)을 회원현령(檜原縣令)으로 좌천시켰다. 정을보(鄭乙輔)를 광양감무(光陽監務), 이권(李權)을 제주목사(濟州牧使)로 임명하였다.

홍탁(洪鐸)은 일신(日新)의 장인이었다.


교서를 내려 이르기를,


황천(皇天)이 돌보아주지 않아 재변이 자주 일어나, 적신 조일신ㆍ정천기 등이 흉악한 무리들을 모아 반역을 도모하였으나, 조종(祖宗)의 영()에 힘입어 원흉들은 이제 모두 죄를 다스려 처형하였으니, 무릇 너희들 내외의 백성들은 모두 안심하고 생업에 종사할 것이며, 다시는 놀라 동요하지 말라. 죄에 대하여는 불충ㆍ불효ㆍ살인죄 이외는 모두 용서하노라." 하였다.


11월에 백관들이 정동성(征東省)에 글을 올려 말하기를,


적신 조일신은 은밀히 반역을 도모하여 제 마음대로 군사를 일으켜, 기씨(奇氏)를 제거하고자 하여 그 집을 쳐부수고, 왕궁(王宮)에 함부로 난입하여 좌우의 신하들을 살해하며, 포학한 짓을 마음대로 하다가, 스스로 그 죄가 용납될 수 없음을 알고 또 간악한 음모가 깨어지고 폭로될까 두려워서, 도리어 그와 동당(同黨)인 최화상(崔和尙) 등을 죽여 입을 막아서 스스로 죄를 벗어나려 하여 왕을 부축해서 말에 태우고, 그 도당들을 체포하여 제 공로라고 큰소리치고는 스스로 정승이 되어 왕의 좌우에 있으면서 늘 칼날을 번뜩이며 기세를 부리고 가만히 다른 생각을 품어 일당을 많이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우리 왕께서는 묘한 계책을 가만히 써서 짐짓 부드러운 얼굴빛을 취하면서 그 틈을 기다려 군사를 싸우게 하지 않고서도 일신을 주륙시켰습니다.


엎드려 바라건대 황제께 아뢰어 법대로 분명히 처단하여 주시고 뒷날에는 그런 일이 없도록 징계가 되게 하여 주십시오." 하였다.


밀직부사 박수년(朴壽年)을 원 나라에 보내어 군기를 보내어 준 데 대하여 사례하고, 도첨의사사(都僉議司使) 한가귀(韓可貴)를 보내어 신년을 하례하였다.


고려사절요 제26


공민왕 1(恭愍王一) 계사 2(1353), 원 지정 13


봄 정월에 홍빈(洪彬)을 우정승으로, 조익청(曹益淸)을 좌정승으로, 이공수(李公遂)를 찬성사로, 이달충(李達衷)을 감찰대부로 삼았다.


*이달충(李達衷) - 문효공 국당 이천의 3.


고려사절요 제26


공민왕 1(恭愍王一) 갑오 3(1354), 원 지정 14


12월에 채하중(蔡河中)을 영도첨의사사(領都僉議司事), 이제현(李齊賢)을 우정승으로, 홍언박(洪彦博)을 좌정승으로, 강인백(姜仁伯)을 판삼사사로, 최천택(崔天澤)을 찬성사로, 강득룡(康得龍)ㆍ홍원철(洪元哲)을 삼사우좌사(三司右左使), 한가귀(韓可貴)를 평리로, 윤침(尹忱)을 지도첨의사사로, 이춘우(李春遇)를 판개성부사로, 전보문(全普門)을 판밀직사사로, 김성보(金成寶)를 지밀직사사로, 안보(安輔)를 밀직제학으로, 강중경(姜仲卿)ㆍ서신계(徐臣桂)를 동지밀직사사로, 차포온(車蒲溫)을 밀직부사로 삼았다.


이제현이 사퇴하려 하였으나 왕이 허락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