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조=대조’로 같은 뜻으로 읽은 문헌 용례
■ ‘세조=대조’로 같은 뜻으로 읽은 문헌 용례
우리 조상님들께서는 ‘세조=대조’로 같은 뜻으로 읽고 사용하였으며 기록으로도 남겼습니다.
‘세와 대에 대하여’ 토론 중 집안에 갖고 있는 제사 축문에 ‘몇 대조 조상에 몇 대손 후손 아무개’로 기록되어 있는 것을 보고 WH 선생께서 ‘몇 대조’에 ‘몇 대손’으로만 나타내어야 한다는 소견을 올렸습니다.
그것은 꼭 그런 것이 아니고 ‘동의’논지에서는 ‘대조=세조’. ‘대손=세손’으로 같은 뜻으로 읽기 때문에 ‘몇 대조에 몇 대손’으로만 읽는 것이 아니고 ‘몇 대조에 몇 세손’ . ‘몇 세조에 몇 대손’ . ‘몇 세조에 몇 세손’으로도 읽을 수 있다고 답변을 드렸습니다.
근거로 조상님들께서 기록에 남긴 용례를 아래와 같이 올려 드렸습니다.
[세조=대조]로 등호(=)좌우의 용어를 같은 뜻으로 읽는 ‘동의’논지로 기록한 용례를 우리말로 해석하여 올립니다.
● 해동역사(海東繹史) 第十一卷(제11권) 世紀(세기) 渤海(발해) 韓致奫(한치윤)
[13년에 선왕(宣王) 대인수(大仁秀) 원년 대언의(大言義. 4대 민왕)가 죽으니, 시호를 희왕(僖王)이라 하였다.
동생인 대명충(大明忠)이 즉위하여 연호를 태시(太始)로 고쳤다.
즉위한 지 1년 만에 죽으니, 시호를 간왕(簡王)이라 하였다.
대명충의 종부(從父)인 대인수가 즉위하여 연호를 건흥(建興)으로 고쳤다.
*대인수의 4대조는 대야발(大野勃)로 바로 고왕(高王) 대조영의 동생이다. 《신당서》]
▲[대인수의 4대조는 대야발(大野勃)]
○ 대야발(대조영의 동생) ~ 대인수(선왕)의 계대
1세 - - → 2세 - → 3세 - → 4세 - → 5세
①고왕.......②무왕.....③문왕....임굉.......⑤성왕
大祚榮.......武藝........欽茂........臨宏.......華與
대조영.......무예........흠무........임굉.......화여
...............................................│
...............................................┗⑥강왕(崇隣)→ ⑦정왕(元瑜).⑧희왕(言義).⑨간왕(明忠)
............................................................................*⑦. ⑧. ⑨왕은 형제 ..............대명충
대야발.......□.............□...........□..........⑩선왕(宣王)- 대인수(大仁秀)
(대조영 동생. 대인수의 4대조)...............(대야발의 4대손. 대조영의 종4대손)
4대조........3대조.......2대조......1대조.....(기준) - 대야발은 대인수의 4대조입니다.
□..............□.............④민왕 (元義원의- 고왕의 첫째동생 계대)
* ①. ②.........⑨. ⑩은 왕의 대수입니다.
* 대야발(大野勃)은 고왕 대조영(大祚榮)의 둘째 동생으로 계대로 ②세 ③세 ④세의 이름은 불명이고 대인수(大仁秀)에 이르러 10대 선왕이 됩니다.
10대 선왕 대인수는 5대 성왕(華與). 7대 정왕(元瑜). 8대 희왕(言義). 9대 간왕(明忠)과 4촌 형제입니다.
* ‘동의’로 대조영(고왕)의 동생 대야발은 10대왕인 선왕의 4대조입니다.
* ‘이의’로는 대야발과 10대 선왕(화여)은 계대세수로 5세이니 5세손으로 읽고 4대조로 읽습니다.
● 묵헌집(默軒集) 李萬運(이만운)
[저자의 족숙인 李東汲(이동급)의「晚覺齋集(만각재집)」역시 1926년에 칠곡에서 목판으로 간행되었고, *종5대조인 李元禎(이원정)의「歸巖集(귀암집)」, 종4대조인 李耼命(이담명)의「靜齋集(정재집)」이 모두 후손 李綱鎭(이강진)의 편찬으로 1937년 칠곡 景巖齋(경암재)에서 간행된 것으로 보아, 이들의 세거지인 칠곡에서 이 당시에 일가의 문집이 대거 간행된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 [5대조인 李元禎(이원정)의「歸巖集(귀암집)」, 종4대조인 李耼命(이담명)의「靜齋集(정재집)」]
○ 광주이씨 종5대조 원정(元禎) ~ 만운(萬運)의 계대
①元禎 - → ②耼命 - → ③世瑗 - → ④允中 - → ⑤東英 - → ⑥萬運
원정............담명............세원............윤중............동영...........만운
종5대조......종4대조.......3대조..........2대조..........1대조.........(기준) - 동의
종5대조......종4대조.......3대조..........2대조..........1대조.........(대불급신) - 이의
종6대조......종5대조.......4대조..........3대조..........2대조.........1대(자기) - 3론
*‘동의’논지로는 원정(元禎)은 만운(萬運)의 종5대조이고 담명(耼命)은 원정(元禎)의 아들로 만운(萬運)의 종4대조입니다.
*‘이의’로는 원정(元禎)은 종5대조이고 담명(耼命)은 종4대조로 읽습니다.
* 3론으로는 원정(元禎)은 종6대조이고 담명(耼命)은 종5대조로 읽습니다.
●농암집(農巖集) 제27권 묘지명(墓誌銘) 경명군(景明君) 묘지명 김창협(金昌協)
[二女。長郡守金生海。*卽昌協五世祖也。]
-두 딸 중에 장녀는 군수 김생해(金生海)에게 시집갔는데 *바로 창협의 5세조이다.
▲[卽昌協五世祖也(즉 창협5세조야)]- 즉 창협의 5세조이다.]
○안동 김씨 생해 ~ 창협 계대
①生海 → ②克孝 → ③尙憲 → ④光燦 → ⑤壽恒 → ⑥昌協
생해..........극효.........상헌.........광찬.........수항.........창협
5세조........4세조........3세조.......2세조.......1세조......(기준)
* 휘 상헌尙憲)은 큰아버지 휘 대효(大孝)에게 출계(出系)하였습니다.
* ‘동의’논지로 휘 생해(生海)는 휘 창협(昌協)의 5세조입니다.
* ‘이의’논지로는 ‘상대하세’를 적용하여 아래로 ‘몇 세손’으로 읽고 위로 ‘몇 대조’로만 읽습니다.
‘상대하세’를 적용하면 원칙과 말뜻이 서로 상반되어 ‘몇 세조’와 ‘몇 대손’으로는 읽지 못합니다.
해서 계대가 6세이니 휘 생해는 휘 창협의 5대조로만 읽습니다.
●농암집(農巖集) 제27권 묘지명(墓誌銘) 성균관 생원 김공(金公) 묘지명. 김창협(金昌協)
[公諱一振。字士玉。慶州之金。胄于新羅。入本朝。有諱稛。開國功臣齊肅公。四傳而爲弘文館直提學千齡。朴挹翠軒仲說所爲作名行記者也。*於公爲五世祖。高祖諱萬鈞。大司憲贈領議政月城府院君。曾祖諱命元。以勳德相穆陵。封慶林府院君。謚忠翼。祖諱守廉。僉知中樞府事贈領議政。鼇原君。考諱南重。禮曹判書。襲封慶川君。謚貞孝。]
- 공의 휘는 일진(一振), 자는 사옥(士玉)이다.
경주 김씨(慶州金氏)는 신라 시대에 혈통이 시작되었는데, 본조에 들어와 휘가 균(稛)인 개국 공신 제숙공(齊肅公)이 있었으며, 4대를 전해 내려와 홍문관 직제학 천령(千齡)이 있었는데, 읍취헌(挹翠軒) 박중열(朴仲說)이 지은 명행기(名行記)의 주인공으로 *공의 5세조이다.
고조 휘 만균(萬鈞)은 대사헌 증 영의정 월성부원군(月城府院君)이고, 증조 휘 명원(命元)은 공훈과 덕망으로 목릉(穆陵 선조(宣祖))을 보필하여 경림부원군(慶林府院君)에 봉해지고 충익(忠翼)이라는 시호를 받았으며, 조고 휘 수렴(守廉)은 첨지중추부사 증 영의정 오원군(鼇原君)이다.
고 휘 남중(南重)은 예조 판서를 지냈고 경천군(慶川君)에 습봉(襲封)되었으며 시호는 정효(貞孝)인데...
▲[於公爲五世祖] - 공의 5세조이다
○ 경주김씨 (균 ~ 일진)의 계대이다.
①稛 - → ②萬鈞 - - → ③命元 → ④守廉 → ⑤南重 → ⑥一振
균.............만균...............명원.........수렴.........남중.........일진
제숙공......월성부원군.....충익공......오원군.....정효공......생원
5대조........고조...............증조.........조............고.............기(나) - 관계
5세조........4세조.............3세조.......2세조.......1세조........(기준) - 몇 세조
* ‘동의’논지로 균(稛)은 일진(一振)의 5세조입니다.
* ‘이의‘로는 계대가 6세에 ’상대‘를 적용하여 ’몇 대조‘로는 5대조로 읽는데 이는 동의논지로 읽는 것과 같습니다.
* ‘이의’논지는 ‘상대하세’를 적용하여 ‘몇 세손’과 ‘몇 대조’로만 헤아려 읽는데 헤아려 읽는 방법이 다릅니다.
○ 고조 ~ 기(나)의 계대의 ‘이의’논지로 읽기
고조 - - → 증조 - → 조 - → 부 - → 기(나) - 관계
36세............37세.......38세......39세.....40세 - 중시조세수
1세..............2세.........3세........4세.......5세 – 계대세수. ‘고조’ 기준
(2세=1대)....1대.........2대........3대.......4대 – ‘2세=1대’ 적용
5세..............4세.........3세........2세.......1세 – 계대세수 ‘ 나’ 기준
4대..............3대.........2대........1대........(2세=1대) - '이의'로 읽은 '몇 대'
1세손...........2세손......3세손.....4세손....5세손 – ‘하세’ 적용. 세=세손
4대조...........3대조......2대조.....1대조....(대불급신) - ‘상대’ 적용. 대=대조
*이의 논지에서는 '상대하세'를 적용하여 아래로는 '몇 세손'으로 읽고 윗대로는 '몇 대조'로 읽습니다.
'몇 세손'은 윗대부터 자리매김하여 '세수'의 수에 '세손'을 붙여 아래로 읽고, '몇 대조'는 아랫대 기준에서 '대불급신'하고 그 윗대(아버지)를 1대조로 하여 윗대로 헤아려 읽습니다.
'이의'논지에서는 '몇 세손' 읽는 방법과 '몇 대조' 읽는 방법이 어떤 기준이 없이 '몇 세손'은 세수를 몇 세손과 같은 뜻으로 읽고 '몇 대조'는 또 아랫대 후손을 제외하고 아버지부터 1대조로 헤아려 올라가는 헤아려 읽는 방법이 다릅니다.
●동계집(桐溪集) 제4권 묘갈(墓碣) 세마(洗馬) 이공(李公) 묘갈명 정온(鄭蘊)
[公系出星山。高麗碧珍將軍悤言之後。歷十六世。有諱約東。官至資憲大夫知中樞府事。贈諡平靖公。封淸白吏。是公五世祖也。其子諱承元。折衝將軍。曾祖諱有良。忠武衛副護軍。祖諱通忠順衛。寔生忠武衛副司果諱賀生。卽公之考也。能聽其子懷才廢擧。其志操廉靜可想。]
- 공의 세계(世系)는 성산(星山)에서 나왔고, 고려 벽진장군(碧珍將軍) 총언(怱言)의 후손이었다. 16세를 지나서 휘 약동(約東)은 벼슬이 자헌대부 지중추부사에 이르고, 시호는 평정공(平靖公)이며 청백리(淸白吏)에 봉해졌는데, 이분이 공의 5세조이다.
그 아들 휘 승원(承原)은 절충장군을 지냈으며, 증조(曾祖) 휘 유량(有良)은 충무위 부호군(忠武衛副護軍)을 지냈다. 조(祖) 휘 통(通)은 충순위(忠順衛)를 지냈고, 이분이 충무위 부사과 휘 하생(賀生)을 낳았는데, 바로 공의 아버지이다.
아들이 재주를 간직하고도 과거(科擧)를 보지 않겠다는 말을 들어주었으니 그 지조가 청렴하다는 것을 상상할 수 있겠다.
▲ [是公五世祖也]- 공의 5세조이다.
○ 성산이씨 (약동 ~ 흘) 계대입니다.
①約東 -→ ②承原 -→ ③有良 -→ ④通 --→ ⑤賀生 → ⑥屹
약동...........승원...........유량...........통.............하생.........흘
평정공........절충장군...부호군공....충순위.......................세마공
5대조.........고조...........증조...........조.............부............기(나) - 관계
5세조.........4세조.........세조...........2세조........1세조.......(기준) - ‘동의’논지
5대조.........4대조.........3대조.........2대조........1대조.......(대불급신) - ‘이의’논지. ‘상대’적용
* ‘동의’논지로는 평정공 휘 약동(約東)은 세마공 휘 흘(屹)의 5세조(=5대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