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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東方禮義之國(동방예의지국)’ 과 ‘東方禮儀之國(동방예의지국)’

녹전 이이록 2017. 5. 19. 09:52

東方禮義之國(동방예의지국)’ 東方禮儀之國(동방예의지국)’



우리나라를 가리키고 상징하는 동방예의지국에서 예의라는 말이 한자로 禮儀이냐? ‘禮義이냐? 를 두고 알아본 내용입니다.


조선왕조실록의 東方禮義之國(동방예의지국)’ 기록


인조 37, 16(1638 무인 / 명 숭정(崇禎) 11) 81(신묘) 3번째기사

예조 판서 이현영이 김상헌의 일에 대해 상소하다


(況喪亂之際, 全沒此等意見, [則東方禮義之稱], 何以迓續一線於後日也?)

- 더구나 전쟁으로 혼란한 요즈음 이러한 의견이 하나도 없다면 동방예의지국이란 호칭을 어떻게 한 낱의 실오라기만큼이라도 후일에 계승하겠습니까.


인조 37, 16(1638 무인 / 명 숭정(崇禎) 11) 85(을미) 1번째기사

대사헌 김반이 김상헌에 관한 의논을 정지시키고 유석·박계영의 파직을 계하다


(而苟無一線守經之論, [惡在其東方禮義之稱也?] )

- 참으로 한 낱의 실오라기만큼이라도 정도(正道)를 지키자는 의논이 없다면 동방예의지국이란 호칭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太宗 15, 8(1408 戊子 / 명 영락(永樂) 6) 39(戊午) 3번째기사

홍서의 직첩을 거둘 것과 사신을 신중하게 간택할 것에 관한 사간원의 상소문


([以我東方禮義之國], 得此汚辱之名, 爲上國之所侮, 寧不爲之痛心也哉! )

- 우리 동방(東方) 예의(禮義)의 나라로서 이 같은 오욕(汚辱)의 이름을 얻어 상국(上國)의 무시를 당하게 되니, 어찌 마음이 아프지 않습니까?


成宗 67, 7(1476 丙申 / 명 성화(成化) 12) 515(丁巳) 7번째기사

대사헌 윤계겸 등이 9조의 시무책을 올리니 원상들에게 의논케 하다.


([且中國以我東方禮義之國], 凡遣使臣, 必擇學行兼備之士。)

- 또 중국이 우리나라를 동방 예의(禮義)의 나라라 하여 사신(使臣)을 보낼 때에는 반드시 학행(學行)이 겸비(兼備)한 선비를 골라서 보냅니다.


仁祖 36, 16(1638 戊寅 / 명 숭정(崇禎) 11) 521(癸未) 1번째기사

포로로 잡혀 갔다 환속한 여자들에 대해 의논하다.


([我東方禮義之國], 一經變亂, 有此擧措, 臣竊爲聖朝羞之)

- 우리 동방은 예의의 나라인데 한 번 변란을 겪은 뒤 이런 거조가 있으니 신은 삼가 성조(聖朝)를 위하여 부끄럽게 여깁니다.”


고전 번역서의 동방예의지국[東方禮義之國] 기록


[]에 해설로 7건이 [東方禮義之國(동방예의지국)]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승정원 일기


고종 22년 을유(1885, 광서 11) 116(병진) 급선무로 삼아야 할 다섯 가지 계책 등을 진달하는 사과 김상권의 상소

(국역)

그러면 인의의 도는 막혀 밝아지지 않고 편벽된 말이 불어나 멋대로 행하여 오백년 [동방예의지국(東方禮義之國)]이 거의 무너져 오랑캐의 풍속이 되어 버릴 것이니, 이것이 신이 통곡하는 세 번째 이유입니다.


한국문집총간


간재집(艮齋集) 艮齋先生文集後編卷之十八 題跋 跋朴氏行錄 전우 (田愚)


則雖不得用太牢之祀而存蓋國之亡[然必稱以東方禮義之國]而不復以布敎爲心矣


의암집(毅菴集) 毅菴先生文集卷之八 書 答族叔恒窩 유인석 (柳麟錫)


益有以悲之也[吾東方禮義之國]家家絃誦


三國志(삼국지) 魏志東夷傳(위지 동이전)에 우리나라를 東方禮義之國(동방예의지국)이라고 했다.


조선 초기에 우리나라에 사신으로 왔던 ()나라 진감(陳鑑)은 본국으로 돌아가 황제(皇帝)에게 우리나라를 동방예의지국(東方禮義之國)이라고 칭찬했다.


* 위의 조선왕조실록의 모든 자료와 간재집(艮齋集). 의암집(毅菴集). 三國志(삼국지) 魏志東夷傳(위지 동이전)에는 [東方禮義之國]이라고 표기한 반면 아래는 [東方禮儀之國]이라 표기하고 있습니다.


동방예의지국(東方禮儀之國)

동방예의지국(東方禮儀之國)淵源(연원)孔子(공자)後孫(후손) 공빈이 쓴 東夷列傳(동이열전) 입니다.


1. 옛날부터 동쪽의 나라가 있는데 그 이름은 東夷(동이)라 했고 지역은 朝鮮(조선) 白頭山(백두산)에 접해있다.


2. 훌륭한 사람 檀君(단군)이 나니까 9개 부족들이 그를 받들어서 임금이 되니 ()임금과 같은 시대의 인물이라 하였다.


3. ()임금은 孟子(맹자)의 말씀에 의하면 저풍 땅에서 출생하여 부하 땅에 옮겨 살다가 명조 땅에서 생을 마치니 東夷(동이)의 사람이다.


4. ()임금은 동이에서 출생하여 中國(중국)에 들어가 天子(천자)가 되어 훌륭하게 백성을 다스리니 묻 임금위에 우뚝 했다 한다.

 

1) 東夷(동이)라는 나라는 비록 크나 스스로 驕慢(교만)하지 않았고,

2) 그 군대는 비록 강하나 남의 나라를 침범하지 않았고,

3) 풍속이 醇厚(순후)해서 다니는 이들이 길을 서로 양보하고,

4) 먹는 이들이 밥을 서로 미루고 양보하였으며

5) 남자와 여자가 따로 거처해 자리를 함께하지 않으니 동쪽에 있는 ()스런 君子(군자)의 나라 東方禮儀之國(동방예의지국)이라 하였다.


이렇기 때문에 나의 할아버지 孔子(공자)께서 東夷(동이)에 살고 싶어 하시면서 그 나라는 陋醜(누추)하지도 않다고 하였다.


고전 번역서의 동방예의지국(東方禮儀之國)


백호전서(白湖全書) 백호전서 부록3 행장(行狀) 행장(行狀) () 윤휴(尹鑴)


- 아래로는 병자년과 정축년의 치욕을 씻고서 [동방예의지국(東方禮儀之國)]으로서의 명성이 백세(百世)에 전해지도록 하는 것이 나의 지극한 소원이다.


東方禮儀之國(동방예의지국) 東方禮義之國(동방예의지국)의 비교


동방예의지국(東方禮儀之國)


예의를 잘 지키는 동쪽의 나라라는 말로, 중국에서 한국을 일컫던 말이다.


* 동방예의지국(東方禮儀之國)이란 표현은 공자(孔子)7대손 공빈(孔斌)이 고대 한국에 관한 이야기를 모아서 쓴 '동이열전'(東夷列傳)에 등장하며 기록되어 있다.


동방예의지국(東方禮義之國)


예의(禮義)는 예절과 의리를 뜻하는데 외교상으로는 황제국이 조공국에게 사용하며 조공국이 황제국에 의리를 잘 지키고 있다는 치하의 뜻으로 사용되는 표현이다.


소견)


위의 글을 나름대로 정리해 보면 禮儀(예의)’ 용어만 보면 예의가 바른 나라라고만 생각되나 禮義(예의)’예의가 바른 나라에다 의리 있는 나라를 덧붙여 말하고 있어 뜻으로 보아 東方禮義之國(동방예의지국)의 표현이 더 포용력이 있고 의미가 넓은 것 같습니다.


그런데 쓰인 말의 뜻으로 보아 소견으로는 동방예의지국(東方禮義之國)중국이 우리나라를 칭하여 예와 의리를 잘 지키고 있다.’라는 뜻에서 한 말이고 동방예의지국(東方禮儀之國)공자의 후예인 공빈(孔斌)이 지었다는 동이열전에 있는 동쪽에 있는 예의 바른 군자의 나라(東方禮儀之國)가 아니겠는가?’라고 한 예의 바른 나라(禮儀之國)’가 바른 표현이 아닐까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