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양홍씨 ‘세손’과 ‘세^ 손’의 용례 - 2
■ 남양홍씨 ‘세손’과 ‘세^ 손’의 용례 - 2
권 선생께서 올려주신 남양 홍씨의 용례입니다.
◈ 용례 원문에 바로 한글로 음을 달고 아래에 이에 대한 보충설명)을 올립니다.
▲ 高麗太師洪公墓表(고려태사 홍공 묘표)
【諱殷悅[1世]..25世孫領議政致中[26世]謹述, 26世孫生員啓宇[27世]謹書. 對始祖狀碣. 子爲一世孫】
-(휘은열[1세]..25세손 영의정 치중[26세]근술, 26세손 생원 계우[27세]근서. 대시조장갈. 자위1세손)
보충설명)
‘동의’논지의 용례입니다.
○계대를 표로 나타내면 아래와 같습니다.
1세 - → 2세 →---→ 26세 →------→ 27세
은열........자...................영의정(휘 치중)......생원공(휘 계우)
(기준)....1세손.............25세손..................26세손
1세는 휘 은열이고 26세는 영의정 치중(領議政致中)으로 시조의 25세손으로 글을 지었고 생원 계우(生員啓宇)는 27세로 시조의 26세손으로 글을 썼습니다.
아들을 1세손으로 읽은 것입니다.
▲ 大提學麻川公派譜發刊辭(대제학 마천공파보 발간사)
【 ...諱逸童[16世]...1992年8月25日 麻川公16代孫鍾旭[32世]謹識. 對中祖譜序. 子爲一代孫 】
- (휘 일동[16세]...1992년8월25일 마천공 16대손 종욱[32세]근지. 대중조 보서. 자위1대손)
보충설명)
세와 대는 같은 뜻으로 읽는 ‘동의’논지의 용례입니다.
○ 시조 1세 ~ 32세 종욱의 계대
1세 - → 2세 →---→ 16세 →---→ 32세
시조.........자..................마천공(일동).....종욱
(기준).......1세손............15세손..............31세손
(기준).......一代孫..........15대손..............31대손
15세조.....14세조...........(기준)...............16세손
15대조....14대조..........(기준).............十六代孫
* 휘 일동(諱逸童)은 시조 16세이고 휘 종욱(鍾旭)은 마천공(麻川公)의 16대손으로 시조 32세입니다.
*子爲一代孫(자위1대손) - 아들은 ‘1대손’이다.
▲ 左僕射洪公墓表(좌복야 홍공 묘표)
【 ...諱毅[3世],,,23世孫左議政致中[26世]謹識, 對中祖狀碣. 子爲一世孫 】
(,,,.휘 의[3세],,,23세손 좌의정 치중[26세]근지, 대 중조 장갈. 자위1세손)
보충설명)
‘동의’논지의 용례입니다
○ 3세 의 ~ 26세 치중의 계대
3세 - → 4세→---→ 26세 - 시조세수
1세........2세............24세 - 계대세수
좌복야....................좌의정
의...........................치중
(기준)...1세손...........23세손
좌복야 휘 의(毅)는 시조 3세이고 좌의정 휘 치중(左議政致中)은 시조 26세로 계대세수는 24세입니다.
조상과 후손간 세수 24세는 ‘몇 세손’으로는 ‘조상의 23세손’으로 읽거나 말합니다.
좌의정(휘 치중)은 휘 의공(諱 毅公)의 23세손이니 아들을 1세손으로 하여 헤아려 읽은 것입니다.
▲ 莊簡公墓表(장간공 묘표)
【 ...諱戎[12世],,,21世孫淳穆[33世]謹記...19世孫在鉉[31世]謹書. 對中祖狀碣. 子爲一世孫 】
- (..휘 융[12세],,21세손 순목[33세]근기..19세손 재현[31세]근서. 대중조 장갈. 자위1세손)
보충설명)
위의 내용으로 계대를 표로 만들어 보겠습니다.
○ 시조 1세 ~ 32세 순목의 계대
1세 →---→ 12세 →---→ 31세 →-→ 33세 - 시조세수
시조..............융....................재현...........순목
12세.............1세...................20세..........22세 - 계대세수
11세조..........(기준)..............19세손........21세손
시조 12세 휘 융을 기준으로 31세 휘 재현은 ‘휘 융의 19세손’이고 33세 휘 순목은 ‘휘 융의 21세손’입니다.
이는 아들을 항상 1세손으로 하여 헤아려 읽었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