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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이씨 시조 신화’의 글

녹전 이이록 2016. 7. 29. 09:11

경주이씨 시조 신화의 글



지금까지 인터넷에 올라 있는 경주이씨에 대하여 쓴 글을 보면 바르게 쓴 글이 거의 없습니다.


1978년도에 간행된 경주이씨 대동보인 무오보가 60여년 이래에 근래에 간행된 대동보로서는 처음 간행된 족보로 이 대동보의 신뢰성을 믿고 이 족보에 수록된 내용을 뿌리의 근간으로 하여 글을 썼기 때문인 것으로 생각됩니다.


이 무오보가 졸속으로 꾸며진 편집내용으로 잘못된 내용이 많아 9년만인 1987년도에 다시 내용을 정리하여 간행된 족보가 중앙표준보이며 정묘보인 경주이씨 대종보입니다.


46권으로 된 경주이씨 대종보에 수록된 내용을 뿌리의 근간으로 하여야 합니다.


아래의 글은 daum의 모 경주이씨 카페에 올라 있는 글입니다.


잘못된 내용과 철자법이 틀려 읽기에 무리가 있는 글로 수정하여 보았습니다.


참고로 한 자료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간단한 수정은 (*.........)안에 바로 고치고 긴 문장은 *[............]로 표시한 후 삭제 수정 후 설명. 소견)으로 올립니다.

 

경주이씨 시조는 휘는 알평이요, 호는 표암이며 자는 천서이고 신라 법흥왕은 (*문선공 충헌공)의 시호를 (*하시고 내리고) (태종무열왕은) 은열왕에 추봉하셨으며 신라 *죄명공신 좌명공신)으로 (*대아찬 아찬)의 벼슬에 (*200세의 200세까지) 장수하셨다 한다.


[*배는 성열왕비인 기씨로서 마한 태조이신 준의 따님으로 기씨 42세손이며 유명하신 태화공주이시다.] 삭제.


삭제 이유)


‘35대로 된 실전세계의 시조 사적에 올라있는 내용으로 ‘35대 상계는 사실적이지 못한 계대임이 밝혀졌기 때문에 위 내용도 사실적이지 못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시조 알평공은 기원전 117년에 지금의 경주시 동천동에 있는 표암봉에 하늘에서 하강 하셨으니 표암(瓢巖)(‘표주박 ’. ‘바위 으로 박 바위라고 하며 밝음을 나타내어) (*밝은 바위란 뜻으로 밝은 바위를 뜻하기도 하여) 우리 시조께서는 세상을 밝게 하시기 위하여 이 세상에 오셔서 (*지금의 경주인 알천 양산촌으로 지금 경주의 일부 지역인 알천양산촌으로.


설명)

경주가 알천양산촌이 아니고 여러 설이 있지만 지금의 경주와 경주의 인근에 6촌이 있었다는 것이 통설입니다.]


나라를 화백회의를 통하여 민주주의 방식으로 다스렸다 한다.


[공은 키가 98촌이며 (*호리띠는 허리띠는) 열 아름이나 되셨으며 손은 (*무릅 무릎) 아래까지 내려오고 용 같은 관상에 매 부리와 같은 코로 눈은 호랑이가 쏘아 보듯이 위엄이 있고 대장군의 기상으로 한번 호령하면 산천초목이 부들부들 떨 정도로 장대하셨다 한다.(*위 내용은 세전(世傳) 기록입니다.)


공은 (*알찬 알천) 양산촌장으로 돌산 고허촌장. 무산 대수촌장. (*자산 지산) 진지촌장. 금산 (*가이촌장 가리촌장) 명월산 고야촌장 등 중 수장으로 6촌장 회의 시에 의장이었다.


기원전 693월에 우리 시조께서는 6부촌의 (*의장 수장)으로서 회의를 하시다 우리도 위로 임금을 모시고 사회 질서를 바로 잡고 나라를 세우고저 하니 덕망 있는 임금을 모시자고 회의 하는 중에 때마침 남쪽에서 이상한 소리와 전광이 (*번적 번쩍)인지라 그곳에 달려가 보니 양산 밑에 있는 지금의 (*표암제 표암재 (*뜰에 있는 삭제) *라정(蘿井)으로 닿아 있어 돌산촌장을 시켜 가본즉 백마가 무릎을 꿇고 절을 하고 있기에 가까이 가 보니 백마는 소리를 크게 울며 사라지고 우물가에 큰 박통 같은 알주머니가 있어 그것을 (*갖어오게 가져오게) 하여 우리 시조께서 (*쪼게신 쪼개신. 갈라본)즉 놀랍게도 속에서 아릿다운 옥동자가 나왔다.


동자를 동천(東泉)에서 목욕시키니 동자의 몸에서는 향기로운 냄새를 풍기고 광채가 빛났으며 그 후부터 우중충하든 해와 달이 빛을 내였고 백성들은 하늘에서 보내 주신 귀여운 (*선인 성인聖人)이라 외치며 서라벌의 온 마을에는 자축하는 잔치가 여러 날 계속하였으며 산천의 초목들도 헌들헌들 춤을 추었고 6부촌에 큰 관심을 불러 일으켰으며 하늘에서 보내주신 옥동자는 세상을 밝게 하시는 사람이라 하여 혁거세라 이름 하셨다.


몇 해 후에 '알영정(閼英井)‘'계룡(鷄龍)’(*을 발견하여 이 나타나) 왼쪽 갈비에서 어린 여아를 낳는 것을 받아다가 보니 얼굴은 매우 고운 것 같았으나 입술이 닭 부리처럼 뾰족하여 이상하게 생각들을 하며 걱정을 하고 있던 중 늙은 도사가 지나며 하는 말이 (*월성 북쪽에 월성 남쪽에) 있는 문천(蚊川) (*지금의 벌천 삭제. 문천이 벌천이 아니라 벌천은 북천=동천을 말합니다.)에 가서 목욕시키면 입 뿌리가 (*떠러질 갓 떨어질 것)이라하기에 시키는 대로 하였더니 (*입 뿌리 입부리)가 떨어지고 절세의 미인으로 변모 하였으며 무럭무럭 자라서 우리 시조께서 주도하는 촌장회의에서 이구동성으로 하늘에서 보내주신 (*선인성신들이니 성인들이니) (*배필을 같이 함이 배필이 됨이) 옳다하여 (*건국 후 결혼시키고 삭제) 혁거세와

(*알영이 알영을) 왕과 왕후로 (*천거 되었고 하였다.)


기원전 574(*길일으 길일을) 택하여 국왕으로 모실 것을 결의한 것이 화백제도의 촌장회의요, 오늘날의 민주주의 방식에 의한 정치제도가 선진국에서 부터 시작되었다는 정치제도가 선진국에 앞서 2000년 전에 우리 시조께서 주관하신 (*6부촌장 6촌 촌장)회의가 있었다는 (*사실을 사실은) 알아둘만 하며 사가들의 역사적 자료로서 큰 관심거리가 되여 온 것이다.


그리하여 혁거세는 13세 때 신라 초대 왕으로 추대 되였으니 신라의 시작이 (*되였다. 되었다.)


(*6부촌장들의 6촌 촌장들이) 건국공신인 원훈 중에서도 (*의장 수장) 역을 하신 우리 시조 할아버지를 일등공신으로 받들어 옴은 우리 후손들로서 마땅히 자랑할 만한 사실이다.


[월성 북쪽에 있는 문천 지금의 벌천에...] 


소견)


월성 북쪽에 있는 하천은 문천(蚊川)이 아니고 북천(北川. 東川동천)입니다.


문천(蚊川. 南川남천)은 월성 남쪽을 흐르는 강입니다.


그러니까 박혁거세를 씻긴 곳은 월성 남쪽을 흐르는 강인 문천(蚊川)이 아니고 월성 동쪽에 있는 샘인 동천(東泉)입니다.


*박혁거세를 씻긴 곳은 우물. 샘인 동천(東泉)이고 알영의 닭 부리 같은 입을 씻어서 떨어지게 한 곳은 동천(東川 - 北川북천) 부리 입술이 떨어져 나갔기 때문에 발전(撥川)이라 한 것입니다.
 

즉 박혁거세를 씻긴 곳은 동천(東泉)인 샘이고 알영을 씻긴 곳은 강인 동천(東川- 北川북천)입니다.


*‘6부촌장들의라는 말은 현재로서는 학자들의 논문에서 보면 ‘6부촌장 6촌촌장. 6부부장으로 어느 것으로 호칭해도 좋은 것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삼국사기는 부()에서 부()로 개칭하였다라고 기록하고 삼국유사는 촌()에서 부()로 개칭하였다고 하니 이를 뒤섞어 위와 같이 호칭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6部村長이라는 호칭은 어울리지 않는 호칭입니다.


()이면 村長(촌장), ()이면 部長(부장)으로 호칭함이 바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