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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례(葬禮). 제사(祭祀)에 대한 문답

녹전 이이록 2016. 5. 25. 09:10

장례(葬禮). 제사(祭祀)에 대한 문답



인터넷에 올라 있는 자료로 옛날 장례(葬禮). 절사(節祀). (). 상식(上食등에 대한 문답과 설명으로 당시의 제사 사정을 알아볼 수 있기에 참고사항으로 복사하여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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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집안에서 하관(下棺- 시체를 묻으려고 파놓은 구덩이에 관을 내림)할 때는 아직도 시간을 점쳐서 합니다.


그렇다면 하관하기 전에는 효자(孝子)가 천광(穿壙- 시신 묻을 구덩이)의 왼쪽에 위치해야 합니까?

그사이에 혹 치전(致奠- 사람이 죽었을 때 형제, 친척, 친구가 고인 영전에 슬픔을 표하는 제식)하거나 조문하는 사람이 있다면 영악(靈幄- 천막을 치고 조문을 받는 곳)에서 받아야 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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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광의 왼쪽에 있어야 할 듯하네.


()에는 장사를 당해서는 비록 군주(君主)가 조문한다 하더라도 마땅히 사양해야 한다고 하였네.


이 시간에 어떻게 치전(致奠)할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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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사람들은 성복(成服- 주상, 주부 이하 복인들이 상복을 갖추어 입는 것)하는 날 반드시 성대하게 전(- 장례 전에 올리는 간단한 제사)을 올리는데 어디에 근거한 것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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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는 그렇지 않네.


그러나 세속을 따른다고 하여 무엇이 나쁠 것이 있겠는가.


소렴조(小斂條- 상례喪禮 가운데 염습斂襲의 첫 번째 절차로 시신을 옷과 이불로 싸는 방법에 대하여 적은 편)재최(齊衰- 어머니 상, 승중상, 계모 상, 장자 상, 시모 상, 양모 상에 입는 오복 중의 하나인 상복)에서부터 5대조를 같이한 자는 단문한다.’ [同五代祖者袒免云云]’까지에 대하여.가례의 뜻으로는 모상(母喪)’재최(齊衰)’의 글 속에 들어가야 할 듯하네.


그러나 감히 옳다고 내세우지는 못하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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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문(袒免)] : 5(五服)이외의 먼 친척이 죽었을 때 두루마기의 오른쪽 소매를 벗고 머리에 사각건(四角巾)을 쓰는 상례(喪禮)


◈[齊衰以下同五世祖者皆袒免于別室(동오세조자개단면우별실)]五世祖者(5세조자)의 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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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 선생님이 齊衰以下 同五世祖者皆袒免于別室據(자최이하 동오세조자 개단문 우별실)를 아래와 같이 풀이 하셨습니다.


[자최복 이하 복인과  오세조(고조의 )자는 모두 별실에서 () () 한다.] 


그렇게 되면 자최복 이하 복인과  5세조(고조의 )자는 모두 별실에서 () ()을하는 것이 모두 복을 입는 것이므로 5세조(고조의 )자가 모두 복을 입는 경우가 됩니다.


 경우 고조(高祖) () 돌아가신 경우 복() 입는다는 듯인데 복은 고조까지만 입는 것이지 고조의 () 돌아가셨을 때에는 복을 안 입는 것으로 압니다.


 그래서 대전과는 연결해서 생각하지 말고 오직 주자가례원문만 보고서 해석하면 복을 입는고조를 같이하는 ’ 이므로 5세조는 ‘고조 해석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대전과 주자가례원문과는  내용이 조금 다르다고 보는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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同五世祖(5세조) 관하여 살펴보건대 同高祖(동고조) 三從(八寸)之間(3종지간. 8) 되고  同五代祖(5대조) 四從(十寸)之間(4종지간. 10) 됩니다.


고로 ()五世祖(5세조) ‘5세의 조상高祖(고조) ()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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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삿날이 명절과 겹치면 새벽에 제사를 모시고서 묘에서 또 설행(設行)하는 것을 보통 의식대로 해야 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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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당연히 보통 의식대로 해야 할 것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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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인(發靷- 장례에서, 상여가 빈소를 떠나 묘지로 향하는 절차)하는 날의 아침. 저녁 상식(上食) 절차를 말하지 않은 것은 무슨 뜻에서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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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례의 발인조에 아침저녁으로 울며 전()을 드리고 밥 먹을 때 상식한다.’는 글이 있네.


이에 근거한다면 이를 처리하기 어렵지 않을 것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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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아들로 승중(承重- 장손長孫으로서 아버지가 먼저 돌아가셔서 조부 이상을 계승하는 손자. 아버지를 대신하여 상복을 입고 조부모의 상례를 치르는 것.)한 사람이 사친(私親- 자기를 낳아 준 어머니)의 복()을 입지 않아 둘째 아들이 주상(主喪) 노릇을 하게 되면 무슨 복을 입어야 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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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아들로서 낳아 준 어머니의 주상이 되었다면 당연히 재최(齊衰- 자최. 상복제도喪服制度에 따른 오복五服의 하나. 조금 굵은 생베로 짓고 아래를 좁게 접어서 꿰맨 상복이다.)의 복을 입어야 할 것이네.


기왕에 이미 주상(主喪)이 되었다면 모든 고사(告詞- 축문 따위)에서 그대로 주상이 됨은 의심할 나위가 없네.


다만 성복(成服)하는 날이나 혹 제주(題主- 준비된 신주(위패)에 누구의 신위인가를 쓰는 것)하는 때 따로 그가 주상이 되게 된 까닭을 아뢰는 것이 원만할 듯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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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손자(外孫子)가 개가(改嫁- 사별이나 이혼하고 다시 결혼함)한 외조모(外祖母)를 위하여 복(- 상중에 입는 예복)을 입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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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는 친손자에게도 개가한 할머니를 위한 복은 말하지 않았네.


하물며 외손이야 말할 나위가 있겠는가.


다만 분명한 근거가 없으므로 감히 옳다고 내세우지는 못하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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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명정(銘旌- 붉은 천에 흰 글씨로 죽은 사람의 관직이나 성명姓名 따위를 적은 조기弔旗로 장대에 달아 상여 앞에 들고 가서 널 위에 펴고 묻는다.)이나 신주(神主)에 씨() 자를 넣는 것은 외람스러울 듯하며, () 자는 창기(娼妓)의 혐의스러움이 없지 않은 듯합니다.


세상 사람들이 혹 조이(召史- 양민良民의 아내)라고 쓰는데 어떤지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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첩에게 자를 쓰는 것은 참람한 것으로는 보이지 않으며, ‘자도 창기의 혐의는 있지 않네.


주위제(朱韋齋- 주희의 아버지 주송朱松)가 주자의 모부인(母夫人)을 일러 낭이라 하였네. 조이(召史)란 호칭은 과연 전아(典雅- 단정하고 우아하다.)하지 못한 말이네.


[C-001] 오순지(吳順之)

- 이름은 익승(益升), 호는 송봉(松峰), 순지(順之)는 그의 자이다. 


[D-001] 정성(定省)의 의식

- 혼정신성(昏定晨省)의 줄임말로, 밤이면 어버이의 이부자리를 보아 드리고 새벽이면 밤사이 잘 주무셨는지 살피는 것을 이른 말이다. 


[D-002] 띠를 묶는 데

- 제사 지낼 때 쓰는 모사(茅沙)의 띠를 가지고 한 말이다.


송자대전(宋子大全) 117권 서() 민원중(閔元重)에게 답함 송시열(宋時烈)


[회재(晦齋 이언적(李彦迪))께서 네 명일(名日)에 대하여 논하기를


이날 새벽에 사당에 참배하고 상식을 드린 다음 이어 묘소에 간다.’ 하였으니 이로 보면 하루에 두 번 제사를 행하는 것도 잘못이 없을 듯하네.]


송자대전(宋子大全) 부록 제7권 연보(年譜) 6. 숭정(崇禎) 47년 갑인 - 송시열(宋時烈)


[]절사(節祀)

- 절기나 명절에 지내는 제사.


조선조에서는 정조(正朝)한식(寒食)단오(端午)추석(秋夕)동지(冬至)납일(臘日) 등의 속절(俗節)에 사당이나 선영(先塋)에 제사 지냈다.


송자대전(宋子大全) 부록 제17권 어록(語錄) 4. 최신(崔愼)의 기록 - 상 송시열(宋時烈)


[]

영외(嶺外- 거제도 및 남해도 등)의 섬사람은 추석 때만 묘제(墓祭)를 지내고 다른 명절에는 한 번도 거행하지 않으니, 이것은 무식해서 선조에 대한 정성이 부족하다 할 수 있겠습니다.


[선생]

이 점 역시 출처가 있기 때문이니, 말을 그처럼 경솔히 해서는 안 된다.


한강(寒岡)이 선조의 묘소에 1년에 한 번 제사를 지냈는데, 경상도의 풍습이 이를 따라 한 차례만 제사를 거


행하게 되었다.


이는가례(家禮)다만 3월 상순에 묘제(墓祭)가 있다.’고 했으므로 '한강'이 가례를 그대로 따랐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