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이씨(慶州李氏)’의 글 수정
■ ‘경주이씨(慶州李氏)’의 글 수정
아래의 글은 인터넷에 올라 있는 ‘정복규의 한국 성씨를 찾아서 ❺-경주이씨(慶州李氏)’의 글입니다.
【시조 이알평은 신라의 육촌장 중 한 사람이다.
이알평은 다른 촌장들과 함께 박혁거세를 왕으로 추대했다.
그 공으로 유리왕이 여섯 촌장들에게 성을 하사할 때 이알평에게는 이씨의 성을 하사한다.
*1세조는 신라 때 벼슬을 지낸 이거명이다.
시조 이래 대대로 경주에 살았기 때문에 후손들이 경주를 본관으로 삼았다.
경주이씨는 고려 말에 크게 세력을 떨쳤고 조선에 들어와서도 문과 급제자 178명, 상신 8명, 대제학 3명을 비롯하여 10여 명의 공신과 많은 학자와 명신을 배출하였다.
*경주 이씨에서 가장 융성한 집안은 상서공파‘백사 이항복의 집’과 익재공파의‘8별집’그리고 이완 대장을 낳은 국당공파다.
*조선조에‘백사집’에서만 영의정 4명, 좌의정 2명, 대제학 2명이 나온다.
8별집에서는 좌의정과 대제학이 각각 1명, 국당공파는 좌의정 1명을 내 조선조 경주이씨의 융성은 사실상 이 3파가 중심이다.
경주이씨는 고려 말 익재 이제현(1287-1367)을 배출하면서 삼한의 명족으로 위치를 굳힌다. 그는 대학자이자 외교가였으며 문장가였다.
*익재는 충선왕부터 공민왕까지 다섯 임금을 섬기며 여러 방면에 공적을 남긴다.
*유명한 8별집은 이익재의 후손으로 그의 7대손 이공린의 일화가 흥미롭다.
이공린은 사육신의 한 사람인 박팽년의 사위다.
장가든 첫날 밤 그는 큰 자라가 나타나“내 아들 8형제를 구해 달라”고 애원하는 꿈을 꾸었다.
꿈을 깨 신부에게 물으니 새 사위를 대접하려고 자라 여덟 마리를 사다 부엌에 두었다는 것이다.
그는 자라 여덟 마리를 모두 풀어주었는데 그 중 한 마리는 죽고 말았다.
뒷날 이공린은 박씨 부인과의 사이에 아들 여덟을 두었다.
*오, 구, 원, 타, 별, 벽, 경, 곤 자에 거북구(龜) 아니면 고기어(魚)를 넣어 이름을 지어주었는데 모두가 문장에 뛰어나‘8문장’으로 꼽혔다.
그런데 셋째 아들이 갑자사화에 연루돼 죽음으로써 첫날 밤 자라 한 마리가 죽은 것과 맞아 떨어졌다.
*그래서 익재공파의 후손들은 자라를 지금도 먹지 않는다.
오성과 한음’의 일화로 유명한 오성대감 백사 이항복은 상서공파의 후예다.
임진왜란 때 5차례나 병조판서를 역임하며 국난을 수습했다.
그는 조선조‘4대 명재상’의 한사람으로 꼽힌다.
이항복은 광해군 때 폐모론이 일어나자 이를 극력 반대하다가 관직이 삭탈되고, 이듬해 북청으로 유배되어 그곳에서 죽었다.
영조 때에 좌의정 이태좌, 소론 4대신의 한 사람인 이광좌, 순조 때의 영의정 이경일 등이 모두 백사의 후손이다.
국당공파에서는 병자호란 뒤 효종, 송시열과 함께 북벌을 계획했던 이완 대장이 가장 걸출하다.
조선조 경주이씨 가문에 가장 이채를 띠는 인물은 우리나라 최초의 천주교인 이벽이다.
정조 3년 경기도 양평군 강상면 앵자봉의 천진암에서 정약용 3형제 등 10여 명을 상대로 천주교를 강론한다.
이것이 우리나라 천주교의 시작이다.
근세의 인물인 헤이그 밀사사건의 이상설도 경주이씨 후손이다.
*초대 부통령 성재 이시영은 백사의 11세손으로 한말 총리대신 김홍집의 사위다.
헤이그 밀사사건의 이상설, 3·1운동 당시 민족대표 33인 중 한 사람인 이갑성도 후손이다.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를 쓴 시인 이상화도 있다.
*삼성그룹의 창업주 이병철은 11대 파 중 비교적 수가 적은 판전공파다.
*이명박 대통령도 후손이다.
이 대통령의 고향마을인 경상북도 포항시 흥해읍 덕성리 덕실 마을은 경주이씨 집성촌이다.
이수향은 현금의 명인으로 거문고, 연주, 악기제작, 단소, 시조창에 뛰어났다.
*주요파는 평리공파, 이암공파, 익재공파, 국당공파, 부정공파, 상서공파, 사인공파, 판전공파, 월성군파, 직장공파, 석탄공파, 진사공파, 교감공파 등이다.
조선시대 과거 급제자는 모두 1,013명이다.
문과 176명, 무과 157명, 사마시 525명, 역과 43명, 의과 35명, 음양과 4명, 율과 14명, 주학 59명이다.】
위 글에서 잘못된 기술이 많아 원문에 *표시를 하고 아래에 ▲[.........]로 나타내고 수정. 소견)을 올립니다.
▲[*1세조는 신라 때 벼슬을 지낸 이거명이다.]
소견)
중시조님을 ‘1세조’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중시조님을 중시조 1세(1세∨조. 1세 조상)로 말하는 것이 바르게 말하는 것입니다.
‘1세조’는 ‘1대조’와 같은 뜻으로 나를 기준으로 아버지를 ‘나의 1세조(=1대조)’라고 합니다.
할아버지 2세조(=2대조). 증조할아버지 3세조(=3대조). 고조할아버지 4세조(=4대조)....등으로 말합니다.
중시조(이거명)는 ‘중시조 1세’나 ‘1세∨조’ . ‘1세인 조상’이라고 나타내어야 합니다.
이때의 중시조님을 가리키는 ‘1세조’는 중국한자말로 ‘1世+祖’로 우리말 해석으로는 ‘1세인 조상’의 뜻입니다.
역으로 우리말 ‘1세 조상’은 한자어로 ‘1世+祖’로 나타낼 수 있고 한자어는 띄어쓰기가 없기 때문에 붙여 써서 ‘1世祖’로 나타낸 것입니다.
즉 이때의 ‘1世祖’는 중국한자말로 우리말이 아닙니다.
우리말 한자어 ‘1세조’는 나를 기준으로 나의 윗대인 아버지부터 ‘나의 1세조(=1대조)’라고 합니다.
▲[*경주 이씨에서 가장 융성한 집안은 상서공파‘백사 이항복의 집’과 익재공파의‘8별집’그리고 이완 대장을 낳은 국당공파다.]
소견)
‘상서공파‘백사 이항복의 집’과 익재공파의‘8별집’그리고 이완 대장을 낳은 국당공파다.‘에서 ‘백사 이항복의 집 - 8별집 - 이완 대장’의 표기는 이항복과 이완은 인물명으로 나타내고 ‘백사집(이항복의 집)’과 ‘팔별집’은 집안으로 나타내어 일관성이 없습니다.
아래와 같이 나타내어야 바릅니다.
[경주 이씨에서 가장 융성한 집안은 상서공파(파조 17세 이과李薖)는 ‘오신(五臣)집’ 속의 ‘백사(白沙- 25세 이항복李恒福)집’ . 익재공파(파조 17세 이제현李齊賢)는 ‘팔별(八鼈)집’속의 화곡(華谷- 29세 이경억李慶億)집‘ . 국당공파(파조 17세 이천李蒨)는 정순공(靖順公 이성중李誠中)의 후손 매죽헌(梅竹軒 25세 이완李浣)집’이다.]
▲[*조선조에‘백사집’에서만 영의정 4명, 좌의정 2명, 대제학 2명이 나온다.
*8별집에서는 좌의정과 대제학이 각각 1명, *국당공파는 좌의정 1명을 내 조선조 경주이씨의 융성은 사실상 이 3파가 중심이다.]
소견)
‘백사집 - 팔별집 - 국당공파’로 집과 파명으로 섞어 나타내면 이해가 가지 않으나 파명과 집안을 모두 나타내면 이해가 쉬우니까 아래와 고쳐 읽어야 합니다.
[조선조에 상서공파에서는‘백사집’에서만 영의정 4명, 좌의정 2명, 대제학 2명이 나온다.
익재공파는 ‘화곡집’에서 좌의정과 대제학이 각각 1명, 국당공파는 ‘매죽헌집’에서 좌의정 1명을 내어 조선조 경주이씨의 융성은 사실상 이 3파가 중심이다.]
▲[*익재는 충선왕부터 공민왕까지 다섯 임금을 섬기며 여러 방면에 공적을 남긴다.]
소견)
경주이씨에 대한 다른 글에서 위와 같이 기술한 글이 많은데 아마 이를 인용한 것 같습니다.
아래와 같이 고쳐 나타내어야 합니다.
[익재는 충렬왕부터 공민왕까지 일곱 임금을 섬기며 여러 방면에 공적을 남긴다.]
*충렬왕- 충선왕- 충숙왕(1)- 충혜왕(1)- 충숙왕(2)- 충혜왕(2)- 충목왕- 충정왕- 공민왕
▲[*유명한 8별집은 이익재의 후손으로 그의 7대손 이공린의 일화가 흥미롭다.]
소견)
익재공 휘 제현은 중시조 17세이고 창평공 휘 공린은 중시조 23세입니다.
창평공은 익재공의 6세손(=6대손)이지 7대손이 아닙니다.
◯ 17세 익재공 ~ 23세 창평공의 계대
17세 -→ 18세 -→ 19세 -→ 20세 -→ 21세 -→ 22세 -→ 23세
제현.......달존.......덕림.......신...........계번.......윤인.......공린
익재공....운와공....군사공....도무공....낙안공....감사공....창평공
(기준).....1세손......2세손.....3세손......4세손.....5세손.....6세손
(기준).....1대손......2대손.....3대손......4대손.....5대손.....6대손
기(나).....자...........손..........증손........현손......내손.......곤손
‘몇 세손’은 ‘몇 대손’과 같은 뜻으로 조상과 후손간의 계대에서 항상 윗대조상을 기준으로 하되 기준은 헤아리지 않고 기준의 아들 대부터 1세손으로 하여 아래로 헤아려 읽습니다.
“중조 23세 창평공(휘 공린)은 17세 익재공(휘 제현)의 몇 세손(=대손)인가?”라고 물을 때 익재공을 기준으로 하되 기준(익재공)은 제외하고 기준의 아들을 1세손으로 하여 아랫대로 헤아려 읽습니다.
▲[*오, 구, 원, 타, 별, 벽, 경, 곤 자에 거북구(龜) 아니면 고기어(魚)를 넣어 이름을 지어주었는데...]
소견)
아래와 같이 기술하여야 바릅니다.
[鼇(오), 龜(구), 黿(원), 鼉(타), 鼈(별), 鼊(벽), 鯨(경), 鯤(곤)자에 ‘거북 구(龜)’ . ‘고기 어(魚)’ . ‘힘쓸 黽(민)’을 넣어 .이름을 지어 주었는데...]
▲[*그래서 익재공파의 후손들은 자라를 지금도 먹지 않는다.]
소견)
대파 익재공파 후손은 15개 중파와 9개 소파로 분파되었습니다.
이 중 중파인 '창평공파' 후손들만이 위 내용에 관계되어 지금까지도 자라를 먹지 않는 것이지 다른 중파까지 '익재공파'라고 하여 자라를 먹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익재공후 '창평공파'의 후손들은 지금도 자라를 먹지 않는다.]
[그래서 익재공후 창평공파의 후손들은 자라를 지금도 먹지 않는다.]
▲[*초대 부통령 성재 이시영은 백사의 11세손으로 한말 총리대신 김홍집의 사위다.]
소견)
위 글은 아래와 같이 고쳐 읽어야 합니다.
[초대 부통령 성재 이시영은 백사의 10세손(=10대손)으로 한말 총리대신 김홍집의 사위다.]
백사공(휘 항복)은 중시조 25세이고 성재공(휘 시영)은 35세로 ‘몇 세손(=대손)’은 아래의 표와 같이 헤아려 읽습니다.
◯ 중조25세 백사공 ~ 35세 성재공의 계대
25세→ 26세→ 27세→ 28세→ 29세→ 30세→ 31세→ 32세→ 33세→ 34세→ 35세
백사공......................................................................................................성재공
항복.........................................................................................................시영
(기준)..1세손...2세손...3세손...4세손..5세손...6세손...7세손...8세손..9세손...10세손
(기준)..1대손...2대손...3대손...4대손..5대손...6대손...7대손...8대손..9대손...10대손
*성재공은 백사공의 10세손이지 11세손(=10대손)이 아닙니다.
▲[*삼성그룹의 창업주 이병철은 11대 파 중 비교적 수가 적은 판전공파다.]
소견)
경주이씨는 중시조 본손 계통에서 8대파로, 지손계통에서 6대파 등 총 14개 대파로 분파하였습니다.
대파가 11개파가 아니고 14개 대파입니다.
위의 글은 아래와 같이 고쳐 읽어야 합니다.
[삼성그룹의 창업주 이병철은 14개 대파 중 중조 15세 판전공(휘 강)을 파시조로 하는 판전공파(判典公派)이다.]
▲[*이명박 대통령도 후손이다.]
소견)
이명박 대통령은 경주이씨이고 중시조 17세 국당공(휘 천)을 파시조로 하는 국당공파입니다.
▲[*주요파는 평리공파, 이암공파, 익재공파, 국당공파, 부정공파, 상서공파, 사인공파, 판전공파, 월성군파, 직장공파, 석탄공파, 진사공파, 교감공파 등이다.]
소견)
경주이씨 대파는 총 14개 대파인데 위에서는 13개 대파명만 나타내고 있습니다.
‘익재공파’ 뒤에 익재공의 아우인 이지정을 파시조 하는 ‘호군공파’가 누락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