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방예의지국’의 한자어는?
■ ‘동방예의지국’의 한자어는?
문의) SS
우리들이 흔히 사용하고 있는 東方禮儀之國(동방예의지국)이라는 한자표기에 있어
첫째: 東方禮儀之國인지 東方禮義之國인지요.(禮儀와 禮義)
둘째: 위 두 말은 다 맞은 표기인지요?
셋째: 위 두 말 본래의 뜻과 바른 사용법은?
넷째: 성균관에서 지향하는 ‘동방예의지국’은 어떻게 써야 옳은 것인지요?
답변)
△ CA
문) 첫째 : 東方禮儀之國인지 東方禮義之國인지요. (禮儀와 禮義)
답) [東方禮儀之國(동방예의지국)]
문) 둘째 : 위 두 말은 다 맞은 표기인지요?
답) 살펴보건대 禮儀(예의)는 예절과 의식으로 사회생활에서 서로 상대방에게 예를 갖추는 행동이나 언사, 몸가짐 등등의 총체를 이르며, 禮義(예의)는 예법과 도의를 의미하는데 禮儀(예의)와 같은 의미로 혼용하기도 합니다.
문) 셋째 : 위 두 말 본래의 뜻과 바른 사용법은?
답) [東方禮儀之國]이라는 말은 아래 “국립국어원”의 풀이와 같이 우리 스스로 칭함이 아니라 지난날 중국에서 우리나라를 일러 칭하던 말입니다.
○ 국립국어원의 풀이입니다.
“「명사」‘동쪽에 있는 예의에 밝은 나라’라는 뜻으로, 예전에 중국에서 우리나라를 이르던 말”
문) 넷째 : 성균관에서 지향하는 동방예의지국은 어떻게 써야 옳은 것인지요?
답) 본인은 성균관을 대표할 위치에 있지는 않으나 [東方禮儀之國]이라 씀이 옳지 않을까 합니다.
△ WH
① (결론적으로 말씀드리면) “禮義之國”입니다.
국가의 기록인 왕조실록 등은 “禮義之國(邦)”으로 표기하고 있습니다.
② “禮義(예의)와, 禮儀(예의)”는 유사해 보이나, 다른 의미입니다.
‘禮義’는 ‘사람이 행해야 할 올바른 禮儀(예의)와 義理(의리)’입니다.
반면 ‘禮儀(예의)’는 ‘예절과 몸가짐’으로서, 곧 ‘義’와 ‘儀’의 차이입니다.
③ 말씀의 ‘本義(본의)와 사용법’은 위 ②항을 참고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성균관은 간행물의 서문 등에서 “東方禮義之國(동방예의지국)”으로 표기하고 있습니다.
▲ CA
[東方禮義之國]이란 표현도 틀린 말은 아니나 현재 중국에서 [東方禮儀之國]을 [东方礼仪之国]이라 표기하고 있습니다.
[仪]=[儀] . [義]=[义]
[東方禮儀之國]이란 지난날 중국에서 생겨났으니 중국식 표현이 바람직하겠지요.
▲ 이이록
두 분 선생님 말씀으로 [동방예의지국]에서 의[義]. [儀]자가 다름을 알았습니다.
두 분 선생님의 말씀에 약간의 차이가 나서 조선왕조실록과 고전번역원의 여러 문헌에서 [동방예의지국]을 검색했더니 [儀]로 쓴 곳도 있습니다만 [義]로 기록한 곳이 거의 대부분입니다.
'禮儀' 라고 쓴다고 해서 안 될 것은 없으나 禮義가 '예의와 의리'로 뜻이 더 깊을 것 같은 소견입니다.
▲ MR
2개 다 무난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성균관 출판부에서도 검토한 바 있으나 2개다 무리가 없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이이록
◈ 조선왕조실록의 ‘동방예의지국’ 기록
○ 인조 37권, 16년(1638 무인 / 명 숭정(崇禎) 11년) 8월 1일(신묘) 3번째 기사
예조 판서 이현영이 김상헌의 일에 대해 상소하다
況喪亂之際, 全沒此等意見, [則東方禮義之稱], 何以迓續一線於後日也?
(황상란지제, 전몰차등의견, [칙동방례의지칭], 하이아속일선어후일야)
- 더구나 전쟁으로 혼란한 요즈음 이러한 의견이 하나도 없다면 동방예의지국이란 호칭을 어떻게 한 낱의 실오라기만큼이라도 후일에 계승하겠습니까.
○인조 37권, 16년(1638 무인 / 명 숭정(崇禎) 11년) 8월 5일(을미) 1번째 기사
대사헌 김반이 김상헌에 관한 의논을 정지시키고 유석·박계영의 파직을 계하다
而苟無一線守經之論, [惡在其東方禮義之稱也?]
(이구무일선수경지론, [악재기동방예의지칭야?])
- 참으로 한 낱의 실오라기만큼이라도 정도(正道)를 지키자는 의논이 없다면 동방예의지국이란 호칭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太宗 15卷, 8年(1408 戊子 / 명 영락(永樂) 6年) 3月 9日(戊午) 3번째 기사
홍서의 직첩을 거둘 것과 사신을 신중하게 간택할 것에 관한 사간원의 상소문
[以我東方禮義之國], 得此汚辱之名, 爲上國之所侮, 寧不爲之痛心也哉!
([이아동방예의지국], 득차오욕지명, 위상국지소모, 녕불위지통심야재!)
- 우리 동방(東方) 예의(禮義)의 나라로서 이 같은 오욕(汚辱)의 이름을 얻어 상국(上國)의 무시를 당하게 되니, 어찌 마음이 아프지 않습니까?
○成宗 67卷, 7年(1476 丙申 / 명 성화(成化) 12年) 5月 15日(丁巳) 7번째 기사
대사헌 윤계겸 등이 9조의 시무책을 올리니 원상들에게 의논케 하다.
[且中國以我東方禮義之國], 凡遣使臣, 必擇學行兼備之士
([차중국이아동방예의지국], 범견사신, 필택학행겸비지사)
- 또 우리나라를 동방 예의(禮義)의 나라라 하여 사신(使臣)을 보낼 때에는 반드시 학행(學行)이 겸비(兼備)한 선비를 골라서 보냅니다.
○仁祖 36卷, 16年(1638 戊寅 / 명 숭정(崇禎) 11年) 5月 21日(癸未) 1번째 기사
포로로 잡혀 갔다 환속한 여자들에 대해 의논하다.
[我東方禮義之國], 一經變亂, 有此擧措, 臣竊爲聖朝羞之
([아동방예의지국], 일경변란, 유차거조, 신절위성조수지)
- 우리 동방은 예의의 나라인데 한 번 변란을 겪은 뒤 이런 거조가 있으니 신은 삼가 성조(聖朝)를 위하여 부끄럽게 여깁니다.”
◆ 고전 번역서의 ‘동방예의지국’ 기록
[주]에 해설로 7건이 [東方禮義之國(동방예의지국)]으로 나타내고 있긴 합니다.
◆ 승정원 일기
○ 고종 22년 을유(1885, 광서 11) 1월 16일 (병진)
급선무로 삼아야 할 다섯 가지 계책 등을 진달하는 사과 김상권의 상소
(국역) 그러면 인의의 도는 막혀 밝아지지 않고 편벽된 말이 불어나 멋대로 행하여 오백년 [東方禮儀之國]이 거의 무너져 오랑캐의 풍속이 되어 버릴 것이니, 이것이 신이 통곡하는 세 번째 이유입니다.
◆ 한국문집총간
○ 간재집(艮齋集) 艮齋先生文集後編卷之十八 題跋 跋朴氏行錄 전우(田愚)
則雖不得用太牢之祀而存蓋國之亡。[然必稱以東方禮義之國]。而不復以布敎爲心矣。
○ 의암집(毅菴集) 毅菴先生文集卷之八 書 答族叔恒窩 유인석(柳麟錫)
益有以悲之也。[吾東方禮義之國]。家家絃誦。
*위의 자료를 살펴보면 우리의 윗대 어른들께서는 대부분 [東方禮義之國(동방예의지국)]이라고 표기하여 나타낸 반면에 아래 의암집의 1건은 [東方禮儀之國(동방예의지국)]이라 표기하고 있다.
◆ 고전 번역서의 ‘동방예의지국(東方禮儀之國)’
○ 백호전서(白湖全書) 백호전서 부록3 행장(行狀) 행장(行狀) 중(中) 윤휴(尹鑴)
- 아래로는 병자년과 정축년의 치욕을 씻고서 [동방예의지국(東方禮儀之國)]으로서의 명성이 백세(百世)에 전해지도록 하는 것이 나의 지극한 소원이다.
소견)
위 △ CA 선생은 국립국어원의 해석을 빌러 ‘동쪽에 있는 예의에 밝은 나라’라는 뜻으로, 예전에 중국에서 우리 나라를 이르던 말”이라면서 ‘東方禮儀之國' 이라고 쓰는 것이 맞다고 하고 △ WH 선생은 옛 선조님들이 사용하던 [동방예의지국(東方禮義之國)]이 바르다라고 하였습니다.
‘禮儀(예의)’ 용어만 보면 ‘존경의 뜻을 표하기 위하여 예로써 나타내는 말투나 몸가짐’이라고 생각되나 ‘禮義(예의)’는 ‘사람이 지켜야 할 예절과 의리’를 덧붙여 말하고 있어 뜻으로 보아 조상님들이 주로 사용하고 기록으로 남긴 동방예의지국(東方禮義之國)의 표현이 더 포용력이 있고 넓은 의미가 있는 것으로 여겨집니다.
‘禮儀’ 한 가지만을 뜻하는 동방예의지국(東方禮儀之國)보다는 ‘예의와 의리’의 뜻을 갖는 동방예의지국(東方禮義之國)으로 씀이 더 바를 것 같습니다.
위에 댓글을 다신 CA님은 중국에서 우리나라를 지칭하는 ‘東方禮儀之國’이 맞다고 하나 고 문헌에 ‘東方禮儀之國’보다는 ‘東方禮義之國’의 기록이 많음은 ‘禮儀’보다 ‘禮義‘에 더 큰 뜻을 두고 사용하였음이 분명합니다.
중국에서 [東方禮儀之國]을 [东方礼仪之国]이라 표기하고 있다고 하는데 이는 중국이 우리를 한 단계 낮추어 보고 ‘禮義’를 ‘禮儀’에만 국한하여 말하는 것으로 생각됩니다.
나라의 위신을 ‘禮儀(예의)’에만 국한하여 나라를 표현할 것이 아니라 ‘義理(의리)‘라는 뜻을 덧붙임으로서 국위를 더 높여주는 뜻이 포함되어 있다는 생각에서 [동방예의지국(東方禮義之國)]으로 표기함이 마땅할 것입니다.
마땅히 선조들이 주로 사용하던 [동방예의지국(東方禮義之國)] 으로 써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