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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이씨 4대의 육가(六歌) - 4

녹전 이이록 2016. 1. 7. 10:06

■ 경주이씨 4대의 육가(六歌) - 4 

 

 

이별(李鼈)의 육가(六歌) - (2)

 

이별(李鼈)"육가(六歌)"에 대한 논문 연원재고(淵源再考)’에 대한 내용과 경주이씨 가문의 육가 전승과 그것의 문학사적 의미를 논제로 한 인터넷에 올라온  글이 있어 자료로 올린다.

 

제목: 이별(李鼈) "육가(六歌)"의 연원재고(淵源再考)

저자: 박해남 (Hae Nam Park )
발행학회: 한국 시가학회
발행정보 : 한국 시가연구 31
발행년도: 2011

 

이별(李鼈)의 육가(六歌)가 김시습(金時習)<동봉육가(東峯六歌)>의 영향을 받았고 <동봉육가>는 남송대 문천()南宋代文天祥)<육가(六歌)> 나아가 두보(杜甫)<동곡칠가(同谷七歌)>와 연관된 것으로 파악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실제 작품을 놓고 본다면 이들 사이의 일관된 연관성을 제시하기는 어렵다는 것이 이 논문의 결론이다.

 

두보의 <동곡칠가(同谷七歌)>와 문천상의 <육가(六歌)> 김시습의 <동봉육가(東峯六歌)>는 형식과 내용에 있어서 어느 정도의 영향을 감지할 수 있다.

 

칠가(七歌)나 육가(六歌)계의 한시가 7언을 기본으로 하면서 몇 글자의 드나듦이 있고 전체가 8구 이상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별의 육가는 정형화된 56구로 정형적으로 번역되어 있어 형식에서의 영향을 논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또 가화자의 처연한 심정을 노래하면서도 부질없이 수염만 쓰다듬는 소극적 태도를 보임에 반해 이별의 는 이황이 세상을 희롱하고 불공(不恭)한 뜻이 있다는 평가를 내린 것에서도 알 수 있듯이 자신의 은거에 대해

강한 자부(自負)를 나타내는 등 내용에 있어서도 분명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이런 관점에서 보자면 김시습의 <동봉육가(東峯六歌)>와 이별의 육가(六歌)사이의 직접적인 영향관계를 논한다는 것은 설득력이 부족하다.

나아가 이별의 육가에 대한 연원으로서 김시습의 <동보육가(東峯六歌)> 문천상의 <육가(六歌)> 두보의 <동곡칠가(同谷七歌)>를 설정하는 것은 폐기하거나 새로운 관점에서 전면적인 재검토가 필요한 부분이다.

지금까지 이별(李鼈)의 육가(六歌)에 대한 연원을 논의하는 경우 대부분의 작품이 육가계 한시(漢詩)의 영향을 받아 성립되었다는 전제를 내세우고 있다.

 

경주이씨 가문의 육가 전승과 그것의 문학사적 의미

 

서지정보

발행 기관 : 한국고시가문학회

수록지 정보 : 고시가연구 / 290/ 233 ~ 255 페이지

저자명 : 이상원 (Sang Won Lee)

 

육가형 시조는 이별의 <장육당 육가>에서 시작되었다.

 

그 후 그의 가문에서는 이정의 <풍계 육가>, 이득윤의 <서계 육가><옥화 육가>, 이홍유의 <산민 육가> 등이 지속적으로 창작되었다.

 

이 글은 이런 경주이씨 가문의 육가전승에 대해 고찰한 것이다.

 

<풍계 육가><장육당 육가> 이후 경주이씨 가문에서 처음으로 창작된 육가형 시조로서, 현실을 철저히 잊은 상태에서 자연과의 완전한 합일을 도모하고 있다는 점에서 <장육당 육가>를 충실히 계승한 작품이다.

 

<서계 육가><옥화 육가>는 비록 작품이 전하지는 않지만 관련 자료를 통해 어느 정도 그 성격을 추정할 수 있다.

 

둘은 약 10년이라는 시차를 두고 이루어진 별개의 육가 2편으로서, 각각 모친상과 광해군 정권 출범이라는 이유로 서계와 옥화로 이거(移居)한 후에 창작했다는 점에서 세속과 단절하고자 하는 의식이 깊게 반영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산민 육가>는 경주이씨 가문의 육가 전통을 이어 세상에 대한 불만이 일정하게 표출된 가운데, 세상에서 버림받은 고독한 존재로 자신을 표상하는 모습에서 전대의 육가에 나타난 강인한 자의식은 많이 약화된 것을 볼 수 있다.

 

경주이씨 가문에서 4대에 걸쳐 창작된 육가형 시조들은 <장육당 육가> 계열로 통합할 수 있지만, 그런 가운데서도 나름의 역사성을 가지고 존재한다는 점을 인식하는 것도 중요하다.

 

이정의 <풍계 육가><장육당 육가>를 비교적 충실히 계승한 작품이지만 산림처사의 삶을 형상화한 작품들과 겹치는 부분도 어느 정도 발견된다.

 

그런가 하면 이홍유의 <산민 육가>에는 17세기 한미한 才智士族(재지사족)의 작품들에서 나타나는 불우한 처지와 관련된 고민이 일부비치기도 한다.

 

이런 점들은 경주이씨 가문의 육가 창작이 당대 시가사의 일반적인 흐름과 어느 정도 호흡을 같이하면서 이루어진 것임을 말해준다.  (이하 생략)

 

- 차회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