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이씨 4대의 육가(六歌) - 4
■ 경주이씨 4대의 육가(六歌) - 4
◈ 이별(李鼈)의 육가(六歌) - (2)
이별(李鼈)의 "육가(六歌)"에 대한 논문 ‘연원재고(淵源再考)’에 대한 내용과 ‘경주이씨 가문의 육가 전승과 그것의 문학사적 의미’를 논제로 한 인터넷에 올라온 글이 있어 자료로 올린다.
◈ 제목: 이별(李鼈) "육가(六歌)"의 연원재고(淵源再考)
저자: 박해남 (Hae Nam Park )
발행학회: 한국 시가학회
발행정보 : 한국 시가연구 31권
발행년도: 2011
이별(李鼈)의 육가(六歌)가 김시습(金時習)의 <동봉육가(東峯六歌)>의 영향을 받았고 <동봉육가>는 남송대 문천()南宋代文天祥)의 <육가(六歌)> 나아가 두보(杜甫)의 <동곡칠가(同谷七歌)>와 연관된 것으로 파악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실제 작품을 놓고 본다면 이들 사이의 일관된 연관성을 제시하기는 어렵다는 것이 이 논문의 결론이다.
두보의 <동곡칠가(同谷七歌)>와 문천상의 <육가(六歌)> 김시습의 <동봉육가(東峯六歌)>는 형식과 내용에 있어서 어느 정도의 영향을 감지할 수 있다.
칠가(七歌)나 육가(六歌)계의 한시가 7언을 기본으로 하면서 몇 글자의 드나듦이 있고 전체가 8구 이상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별의 육가는 정형화된 5언6구로 정형적으로 번역되어 있어 형식에서의 영향을 논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또 가화자의 처연한 심정을 노래하면서도 부질없이 수염만 쓰다듬는 소극적 태도를 보임에 반해 이별의 는 이황이 세상을 희롱하고 불공(不恭)한 뜻이 있다는 평가를 내린 것에서도 알 수 있듯이 자신의 은거에 대해
강한 자부(自負)를 나타내는 등 내용에 있어서도 분명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이런 관점에서 보자면 김시습의 <동봉육가(東峯六歌)>와 이별의 육가(六歌)사이의 직접적인 영향관계를 논한다는 것은 설득력이 부족하다.
나아가 이별의 육가에 대한 연원으로서 김시습의 <동보육가(東峯六歌)> ←문천상의 <육가(六歌)> ←두보의 <동곡칠가(同谷七歌)>를 설정하는 것은 폐기하거나 새로운 관점에서 전면적인 재검토가 필요한 부분이다.
지금까지 이별(李鼈)의 육가(六歌)에 대한 연원을 논의하는 경우 대부분의 작품이 육가계 한시(漢詩)의 영향을 받아 성립되었다는 전제를 내세우고 있다.
◈ 경주이씨 가문의 육가 전승과 그것의 문학사적 의미
서지정보
발행 기관 : 한국고시가문학회
수록지 정보 : 고시가연구 / 29권 0호 / 233 ~ 255 페이지
저자명 : 이상원 (Sang Won Lee)
육가형 시조는 이별의 <장육당 육가>에서 시작되었다.
그 후 그의 가문에서는 이정의 <풍계 육가>, 이득윤의 <서계 육가>와 <옥화 육가>, 이홍유의 <산민 육가> 등이 지속적으로 창작되었다.
이 글은 이런 경주이씨 가문의 ‘육가’전승에 대해 고찰한 것이다.
<풍계 육가>는 <장육당 육가> 이후 경주이씨 가문에서 처음으로 창작된 육가형 시조로서, 현실을 철저히 잊은 상태에서 자연과의 완전한 합일을 도모하고 있다는 점에서 <장육당 육가>를 충실히 계승한 작품이다.
<서계 육가>와 <옥화 육가>는 비록 작품이 전하지는 않지만 관련 자료를 통해 어느 정도 그 성격을 추정할 수 있다.
둘은 약 10년이라는 시차를 두고 이루어진 별개의 육가 2편으로서, 각각 모친상과 광해군 정권 출범이라는 이유로 서계와 옥화로 이거(移居)한 후에 창작했다는 점에서 세속과 단절하고자 하는 의식이 깊게 반영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산민 육가>는 경주이씨 가문의 육가 전통을 이어 세상에 대한 불만이 일정하게 표출된 가운데, 세상에서 버림받은 고독한 존재로 자신을 표상하는 모습에서 전대의 육가에 나타난 강인한 자의식은 많이 약화된 것을 볼 수 있다.
경주이씨 가문에서 4대에 걸쳐 창작된 육가형 시조들은 <장육당 육가> 계열로 통합할 수 있지만, 그런 가운데서도 나름의 역사성을 가지고 존재한다는 점을 인식하는 것도 중요하다.
이정의 <풍계 육가>는 <장육당 육가>를 비교적 충실히 계승한 작품이지만 산림처사의 삶을 형상화한 작품들과 겹치는 부분도 어느 정도 발견된다.
그런가 하면 이홍유의 <산민 육가>에는 17세기 한미한 才智士族(재지사족)의 작품들에서 나타나는 불우한 처지와 관련된 고민이 일부비치기도 한다.
이런 점들은 경주이씨 가문의 육가 창작이 당대 시가사의 일반적인 흐름과 어느 정도 호흡을 같이하면서 이루어진 것임을 말해준다. (이하 생략)
- 차회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