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재 이제현'의 글 수정
■ 익재 이제현의 글 수정
익재 이제현에 대한 자료가 경주이씨 관련 모 카페에 아래와 같이 올라 있습니다.
붉은 글자는 수정을 요하는 글자이고 청색은 추기. 보충의 내용입니다.
◆ 경주이씨의 유래.
시조는 초기 신라의 6촌 중 *알천양산촌(閼川楊山村 : 뒤에 及梁部- 밑돌부)의 촌장으로 전해지는 표암공(瓢岩公) 알평(謁平)이다.
표암공이라는 호칭은 알평이 애초에 *경주(진한 땅) *박바위(瓢巖표암- 박바위. 밝바위)에 강림했다는 전설에서 취해진 것이다.
기원전 117년 한무제 원수6년 갑자에 하늘로부터 진한 땅의 표암봉인 밝바위로 처음 내려오셨고 양산촌장으로서 부족들을 다스리며 혁거세를 양육시켰고 신라 초대 왕으로 *추대하시는데(추대하였으며) 6부 촌장의 수장으로서 역사적으로 유명한 화백회의제도를 시행하셔서 *오늘날의 민주주의 제도를 구현시키신 선구자였음을 호언 할 수 있다.(오늘날의 민주주의 제도를 구현시킨 선구자였습니다.)
서기 32년 신라 3대왕인 유리왕 9년(서기 32년)에는 진한 6촌을 6부로 개칭할 때 지금의 경주시 일원에 해당되는 양산촌을 급량부라 부르고 성씨를 이씨라고 사성(賜姓)하였으니 경주라는 지명을 붙여서 경주이씨(慶州李氏)라고 부르기에 이르렀다.
「삼국사기」의 기록에 의하면 서기 32년(신라 유리왕 9년) 유리왕이 다른 다섯 촌장들과 함꼐 사성하여 양산촌을 급량부로 개칭하고 그에게 이씨의 성을 내려 주었다고 한다.
그 후 후손들은 알평의 *36세손(원대손遠代孫)으로 신라 진골(眞骨) 출신인 거명(居明)을 중시조로 하고, 시조의 발상지인 경주를 본관으로 하여 세계(世系)를 이어왔다.
거명은 신라 때의 인물로 진골(眞骨) 출신이다.
그는 시조 알평의 *36세손(원대손遠代孫)이며 시조로부터 현재 熙字(희자) 돌림까지 대략 *75대 ⇒ 삭제) 약 2,000년이 된다.
[대략 75대가 된다. ⇒ 삭제]
- 신라 초 경주이씨 시조이신 표암공 휘 알평의 아들 대부터 중시조이신 신라 말 소판공 휘 거명의 부친 대까지 약 900년간의 계대는 전연 알지 못하는데 대략 75대는 어떻게 헤아려 읽거나 말할 수 있는 대수인가?
경주이씨의 세계(世系)는 중시조 거명의 *16대손(14 ~ 20대손. 15 ~ 21세)(고려 말기)에서 크게 8파로 나뉘고 다시 아래로 내려오면서 *대소 70여(중소 80여) 파로 분파된다.
경주 이씨의 세계(世系)는 거명의 *17세손(14 ~ 20세손](고려 말기)에서 *8파(14개파)로 대별되고 다시 아래로 내려오면서 대소 70여 파로 분파된다.
* 같은 내용을 위쪽 글은 ‘거명의 몇 대손’으로 나타내고 아래쪽 글은 ‘거명의 몇 세손’으로 나타내어 ‘몇 대손’으로는 16대손. ‘몇 세손’으로는 17세손으로 ‘대손’과 ‘세손’을 각기 따로 다르게 읽었으나 우리 경주이씨 조상님들께서는 ‘대손=세손’으로 같은 뜻으로 읽고 기록하였습니다.
◆ 이씨의 발전.
(본손 계통) 8대파는 평리공파(評理公派)· 이암공파(怡庵公派)· 익재공파(益齋公派)· 호군공파(護軍公派)· 국당공파(菊堂公派)· 부정공파(副正公派)· 상서공파(尙書公派)· 사인공파(舍人公派) 이다.
이 밖에 지손(支孫) 계통으로 판전공파(判典公派)· *시랑공파(侍郞公派) ⇒ 삭제 · 석탄공파(石灘公派) 등 (6대파가) 있다.
(지손 계통으로 월성군파. 직장공파. 진사공파. 교감공파가 누락됨)
한편 경주이씨 *분파도(分派圖) ⇒ 분적도(分籍圖)에는 전술한 *10본 ⇒ 8본의 분적종 중 *성주이씨 ⇒ 삭제. (합천이씨 차성이씨)와 우계이씨는 거명의 윗대인 (시조 후손)에서 분파되었으며 나머지는 *그 ⇒ 거명의 아랫대에서 분파된 것으로 나타나 있다.
경주이씨는 고려 말에 크게 세력을 떨쳤고 조선에 들어와서도 문과 급제자 178명, 상신 8명, 대제학 3명을 비롯하여 10여 명의 공신과 많은 학자, 명신을 배출하였다.
8대파 ⇒ 14개 대파 중 상서공파의 백사(白沙: 李恒福)집이 가장 많은 인물을 배출하였고, 익재공파의 세칭 8별(鼈)집안의 화곡(華谷 李慶億)집과 매죽헌(梅竹軒) 완(浣) 대장을 낳은 국당공파가 그에 버금간다.
경주이씨가 조선에 배출한 상신· 문형 가운데 백사집에서 영의정 4명, 좌의정 2명, 대제학 2명이 나왔고, 8별집의 화곡집에서 좌의정과 대제학 각 1명, 국당공파 중의 정순공(靖順公: 誠中) 후손에서 좌의정 1명이 나와 이들 3파가 사실상 경주이씨의 주축을 이루었다.
고려 말의 대학자이자 외교가, 문장가, 충신이기도 했던 익재(益齊) 이제현(李齊賢. 1287 ~ 1367)이 고려 때의 경주 이씨를 대표한다.
이제현은 *충선왕부터 공민왕까지 다섯 임금을 섬기며( ⇒ 충렬왕부터 공민왕까지 일곱 임금을 모시고) 여러 방면에 공적을 남겼고 문장가였을 뿐만 아니라 탁월한 외교가였다.
조선시대에는 8형제가 모두 문장에 뛰어나 8문장으로 꼽히는 박팽년의 사위인 이공린(李公麟)의 아들들과 임진왜란이 터지자 유성룡을 도와 병참 책임을 맡는 등 큰 활약을 한 이시발(李時發)을 비롯하여, 오성과 한음의 일화로 유명한 오성대감 이항복은 임진왜란 때 5차례나 병조판서를 역임하여 국난을 수습, 전후 정승에 올라 당쟁 을 막는데 힘쓴 조선시대 4대 명재상의 한 사람으로 청백리에 올랐다.
잘못된 내용에 대한 보충 설명)
◆ 경주이씨의 유래에서
▲[진한 땅의 표암봉인 밝바위로 처음 내려오셨고...]
- 표암봉(瓢巖峯)에서 瓢(표)는 ‘표주박 표’자이고 巖(암)은 ‘바위 암’자로 이를 [박바위]라고 합니다.
박혁거세의 ‘박’자 등이 밝음을 나타내는 글자였으므로 ‘박바위’를 ‘밝바위’라고 하는 것입니다.
▲[양산촌의 급량부라 부르고...]
- ‘양산촌의 급량부’가 아니고 ‘알천양산촌(양산부)을 개칭하여 급량부라 부르고’....라고 고쳐야 합니다.
▲[그 후 후손들은 알평의 36세손으로 신라 진골출신인 거명을 중시조로 하고...]. [그는 시조 알평의 36세손이며...]
- 진골 출신인 중시조 소판공(휘 거명)은 시조(휘 알평)의 36세손이 아닙니다.
시조 아드님 대부터 중시조 아버지 대까지 약 900년간은 계대를 전연 알지 못합니다.
1932년 분적종 합천이씨 임신대보에 처음 발굴되어 게재되었다는 35대 실전 상계는 한 때 사실적으로 받아들여 쓰였지만 뒤에 여러 내용이 사실적이 아닌 계대로 밝혀져 35대 실전세계는 참고용으로만 쓰이고 있습니다.
중시조(소판공. 휘 거명)는 시조 36세가 아닌 1세로 기세하고 있습니다.
▲[시조로부터 현재(熙字돌림)까지는 대략 75대(약 2,000년)가 된다.]
- 시조 아들 대부터 중시조 소판공의 아버지 대까지 약 900년간의 계대를 전연 모르기 때문에 중조 40세인 '희' 항렬을 시조 75대로 읽을 수는 없습니다.
또 75대이면 75대이지 대략 75대는 무엇입니까?
한 분의 조상님이 빠지면 아버지가 할아버지로 읽혀지는데 정확한 대수가 아닌 대략이라는 말은 계대를 헤아리는데 사용하면 안 됩니다.
‘희’항렬은 시조 75세가 아닌 그냥 중시조 세수로 ‘중시조 40세’입니다.
▲[경주이씨의 세계는 중시조 거명의 16대손(고려 말기)에서 크게 8파로 나뉘고 다시 아래로 내려오면서 대소 70여 파로 분파된다.
경주 이씨의 세계는 거명의 17세손(고려 말기)에서 8파로 대별되고 다시 아래로 내려오면서 대소 70여 파로 분파된다.]
- ‘몇 대손’으로는 중시조 16대손. ‘몇 세손’으로는 중시조 17세손으로 각기 다르게 읽었습니다.
같은 말을 중시조 '16대손'으로도 말하고 중시조 '17세손'으로 대손과 세손을 달리 읽어서 분파한 것으로 말한 것입니다.
우리 경주이씨는 중시조 15 ~ 21세에서 본손 계통 8대파와 지손계통 6대파 등 총 14개 대파로 분파하였습니다.
이를 우리는 중시조님의 14세손(=14대손) ~ 20세손(=20대손)에서 분파한 것으로 말을 해야 바르게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 경주이씨는 ‘대손=세손’을 같은 뜻(동의)으로 읽습니다.
경주이씨 족보. 문헌. 비문에서 세손=대손, 세조=대조 용례 59건 중 56건이 ‘세와 대는 같은 뜻(동의)’으로 읽은 자료도 있습니다.
16대손은 17세손이 아닌 16세손으로 같은 뜻으로 읽습니다.
◆ 이씨의 발전.
▲[8대파는 평리공파(評理公派) · 이암공파(怡庵公派) · 익재공파(益齋公派) · 호군공파(護軍公派) · 국당공파(菊堂公派) · 부정공파(副正公派) · 상서공파(尙書公派) · 사인공파(舍人公派) 등이다.]
- 8대파와 파시조는 아래와 같습니다.
평리공파(評理公派- 중조 16세 인정) · 이암공파(怡庵公派- 중조 17세 관) · 익재공파(益齋公派- 중조 17세 제현) · 호군공파(護軍公派- 중조 17세 지정) · 국당공파(菊堂公派- 중조 17세 천) · 부정공파(副正公派- 중조 17세 매) · 상서공파(尙書公派- 중조 17세 과) · 사인공파(舍人公派- 중조 17세 조)이다.
▲[이 밖에 지손(支孫) 계통으로 판전공파(判典公派) · 시랑공파(侍郞公派) · 석탄공파(石灘公派) 등이 있다.]
- 1987년도 간행 경주이씨 대종보의 분파도에는 '시랑공파'는 대파명이 아닙니다.
지손 계통의 대파명은 판전공파(判典公派- 중조 15세 강). 월성군파(月城君派- 중조 21세 지수). 직장공파(直長公派- 중조 19세 양오). 석탄공파(石灘公派- 중조 19세 존오). 진사공파(進士公派- 중조 19세 존중). 교감공파(校勘公派- 중조 19세 존사)의 6개 대파입니다.
월성군파 파시조이신 월성군(중조 21세 휘 지수)의 9세조가 시랑공(중조 12세 휘 신우)입니다. 한 계대에 대파가 2개일 수는 없는 것이니 월성군파만 대파입니다.
본손 계통 8대파만을 강조하는데 본디 경주이씨는 총 14개 대파로 분파하였습니다.
본손 계통 8대파만을 말하지 말고 14개 대파로 말을 해야 합니다.
▲[경주이씨 분파도(分派圖)에는 전술한 10본의 분적종 중 성주이씨와 우계이씨는 거명의 윗대에서 분파되었으며 나머지는 그 아랫대에서 분파된 것으로 나타나 있다.]
- '분파도'가 아니고 '분적도'라고 해야 합니다.
10본의 분적종이 아니고 7본의 분적종입니다.(경주이씨 대종보 분적도 참조)
'시조 후손'에서 분적한 분적종은 합천이씨. 차성이씨. 우계이씨이고 중시조 이후에 분적한 분적종은 아산이씨. 재령이씨. 원주이씨. 진주이씨 입니다.
▲[이제현은 충선왕부터 공민왕까지 다섯 임금을 섬기며...]
- ‘충선왕부터 공민왕까지 다섯 임금’이 아니고 ‘충렬왕부터 공민왕까지 일곱 임금을 모시고...’라고 해야 합니다.
충렬왕→충선왕→충숙왕(2)→충혜왕(2)→충목왕→충정왕→공민왕
충숙왕(2)과 충혜왕(2)은 중조(重祚- 再祚- 임금을 2번을 함)이다.
▲ 잘못 읽은 글
박팽년의 사위인 이공인(李公麟) ⇒ 이공린(李公麟)
삼중다광 ⇒ 삼중대광
동덕협의 창화공신 ⇒ 찬화공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