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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사 모시는 방법과 차례 – 펌 자료

녹전 이이록 2015. 11. 25. 09:00

제사 모시는 방법과 차례

 

 

인터넷에 아래와 같은 읽을 만한 글이 올라 있어 복사하여 올립니다.

 

참고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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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안마다 제사 모시는 방법을 달리 합니다.

 

유명한 유학자마다 쓴 글이 다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복숭아가 귀신을 쫓는다고 하여 제사상에 복숭아를 올리지 않으나 성호 이익 선생은 복숭아를 제상에 올려도 좋다고 말하는 정도입니다.

 

우리나라의 유명한 인물의 종갓집들도 모두 제사 모시는 모습이 다릅니다.

 

제수 차리는 것부터 제사모시는 의식이 같은 것이 없습니다.

 

부자 집안과 빈한한 집안의 제사 모시는 모습도 다르고....

 

고인이 살아생전 해드린 대로 필요한 의식만 정하여 제사를 모시면 될 것입니다.

 

한 가지 빠졌다고 혼백이 나무라는 것은 아니지요.

 

빠지고 잘못된 내용 몇 가지를 첨부하니 참고 하세요.

 

제사상 차릴 때

 

飯羹(반갱- 밥과 국)을 진설할 때 羹飯(갱반- 국과 밥)순으로 놓고 匙箸(시저- 숟가락과 젓가락)羹飯(갱반) 중간에 놓는다.

 

-------------- 신위

-------()---수저---()

 

제사상의 조율시이(棗栗柹梨)의 진설입니다.

 

집안마다 진설하는 방법이 틀립니다.

 

제사자 쪽에서 보면 제상의 좌측 맨 끝자리부터 조율시이로 차례로 진설하는 방법

 

제상의 가운데를 기준으로 좌우로 나눠 홍동백서에 따라 우측에 (- 대추). (- . 곶감)을 진설하고 좌측에 (- )(- )를 진설하는 방법

 

아니면 동쪽()에서 부터 조(대추). (). (). (). 순으로 진설하는 방법

 

아니면 홍동백서에 따라 제상의 맨 좌측에 율()과 이()를 진설하고 제상 맨 우측에 '(대추)와 시()‘를 놓는 방법.

 

각기 진설 모양이 다릅니다.

 

이는'조율시이' 만 알았지 '홍동백서'의 이치를 소홀히 한 것 같습니다.

 

대추는 붉은 색. 밤은 흰색. 감은 붉은 색. 배는 흰색입니다.

 

이를 홍동백서(붉은 것은 동쪽에 흰 것은 서쪽에 진설)의 원칙을 따르면 번과 번이 진설방법으로는 바른 것 같습니다.

 

소견)

 

가가례로 ① 번이 가장 많이 진설합니다.

 

제사는 長子(장자)宗嗣(종사)를 잇습니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시면 아버지께서 종사를 잇고 아버지가 돌아가시면 長孫(장손)이 할아버지 아버지 제사를 모셔야 합니다.

 

장손에게 후손이 없으면 양자를 들여야 합니다.

 

장손에게 후손이 없다고 삼촌(작은 아버지)이 제사를 가져가 삼촌 명으로 제사를 모실 수는 없습니다.

 

삼촌이 제사를 지낼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축문에 쓰이는 제주 명은 항상 아버지 이름이나 장손 명의라야 합니다.

 

동생에게 후손이 있을 때 동생이 제사를 가져가 모실 수도 없습니다.

 

동생의 아들을 양자로 들여 제사를 잇도록 해야 합니다.

 

어머니께서 돌아가시고 아버지께서 생존해 계신다면 아들이 제주가 되는 것이 아니고 아버지께서 제주가 됩니다.

 

아버지께서 어머니의 제사를 주관하다가 연세가 들어 70세를 넘기거나 몸이 불편하여 제사를 모시지 못하면 아들에게 어머니의 제사를 물려주는 것이 우리나라 제사 예법입니다.

 

필자 소견)

 

한 예로 우리 익재공후 판윤공파의 실주(실제 제사를 주관하는 제주)는 알고 보면 자 돌림으로 58촌이나 되는 먼 일가인 교감공파에서 양자로 온 조상의 후손이 판윤공의 실지 후손들은 제쳐두고 핏줄이 까마득한 먼 쪽 조상의 후손이 양자로 들어와 지금도 제주로 제사를 모시고 있습니다.

 

이는 핏줄보다 제사를 모시는 일을 더 중요하게 보았기 때문에 먼 쪽 일가에서 양자를 들였기 때문에 빚어진 일입니다.

 

벌써 150년 전의 일입니다.

 

10-20년 전만 하여도 여자 분들은 제사 의식에 참여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주부의 아헌 차례도 옛날에는 지켜졌으나 근래까지 남자들이 모두 독식을 하였습니다.

 

이제는 일상생활에서 남녀 차별인 것은 깨뜨려져야 합니다.

 

여자들도 제사에 참석함은 물론 그 역할을 다해야 합니다.

 

남자가 없는 집안에서는 양자를 들여야 하지만 양자를 들이지 못할 때는 딸이 제주가 되어 친정부모의 제사를 시댁에서 모시는 것입니다.

 

장인장모의 제사를 딸은 모셔도 사위는 모시지 못하는 것이 전부터 내려오는 관례이나 이것도 깨어져야할 전통입니다.

 

딸은 며느리로 들어와 시부모 제사를 모시는데 사위는 반대로 그 역할이 없다는 것은 남존여비 시대의 차별입니다.

 

사위는 형편이 넉넉하면 제수비용이나 많이 내어 놓는 것이 고작이라니 사정이 되면 장인장모 제사를 부인과 같이 모시는 것이 나쁠 것은 없다고 봅니다.

 

명절 때 차례에 대하여 말하겠습니다.

 

몇 년 전에 제사 순서를 말할 때 명절 제사를 기제사에 준해서 모셔야 된다고 하였는데 이것이 정 불편하면 상을 차려 놓고 단배(절 한 번)만으로 차례를 모셔도 좋습니다.

 

기제 시간

 

옛날에는 "돌아가신 날 자시(子時)에 제사를 행한다."라고 되어 있다.

 

자시(子時)라는 시각은 지금 시각으로 말하면 밤 11시부터 다음 날 새벽 1시를 일컫는다.

 

그래서 옛날 자시라는 시각 개념과 현재의 시각 개념과는 차이가 난다.

 

자시(子時)에 고인이 돌아가셨다고 할 때 밤 1130분에 돌아가신 분과 밤 1230분에 돌아가신 분은 엄격히 말해서 옛날에는 같은 날에 돌아가신 날로 하였지만 지금은 전날과 다음날로 돌아가신 날이 달라진다.

자시라는 시각 개념으로 따질 것이 아니라 자정(子正)을 기점으로 전날이냐 다음 날이냐를 결정해야 될 것이다.

 

자정(子正- 12)부터 인시(3시 이후 - 5)까지 날이 새기 전 새벽에 기제를 올리는 것이 바르다.

 

제사는 음력날짜로 고인이 돌아가신 날짜에 모신다.

 

새벽에 제사를 모시는 이유는 깨어나 시끄럽고 더럽혀지기 전에 조용하고 깨끗한 첫 새벽에 제사를 모시는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은 가정의례 준칙에서처럼 "별세한 날 일몰 후 적당한 시간"에 지내게 되어 있다.

 

아직도 옛 풍습 그대로 첫 새벽에(주로 축시 1-3. 안동 권씨)제사를 모시나 요즈음은 대부분 퇴근 후 가족의 편의를 생각해서 오후 8시나 9시에 지내는 집들이 많다.

 

* 간혹 잘못 알고 별세한 전일 오후 7 - 12시경에 지내는 사람이 있는데 기제는 별세한 날에 지내는 제사이므로 별세한 전일에 지내는 것은 잘못이다.

 

이유는 아래 기제일과 재계일를 참고하면 명백해진다.

 

* 기제일(忌祭日)과 재계일(齋戒日)

 

별세(別世)하신 전일(前日)이 입제일(入齋日)이고 별세(別世)한 날이 기일(忌日)로서 정재일(正齋日)이고 제사 모신 후는 바로 파재(罷齋)이다.

 

2일간은 재계(齋戒- 몸과 마음을 깨끗이 하고 음식과 언행을 삼가하고 부정을 멀리 하는 일)를 해야 한다.

입제일(入齋日)에는 제주(祭主)와 주부(主婦)가 목욕재계(沐浴齋戒)하고 음주(飮酒)를 삼가고 가무(歌舞)를 하지 않으며 상가(喪家)의 조문(弔問)도 하지 않고 집안을 깨끗이 청소하고 고인(故人)의 생존시(生存時)를 회상(回想)하면서 추모(追慕)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