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성군’에서 ‘월성이씨’?
● ‘월성군’에서 ‘월성이씨’?
경주이씨(慶州李氏)를 월성이씨(月城李氏)라고도 합니다.
아래의 글은 ‘월성이씨’에 대한 자료를 올린 글에 쓰여 있는 문장입니다.
[근래에 경주를 ‘월성군’이라는 말에서 ‘월성이씨’라고 하였다.] 라는 글이 있습니다.
근래라고 하면 언제일까?
조선 시대일까? 해방이후나 정부수립 후일까?
1955년경을 가리키는 말을 '경주시 연혁'에서 찾았습니다.
1955년 9월 1일 경주군, 경주읍과 내동면 등이 ‘경주시’로 승격되고, ‘경주군’은 ‘월성군(月城郡)’으로 개칭되었다는 것입니다.
'근래'라는 말을 두고 보아 이 시기를 의미하는 것이 틀림없는 것이 1955년 전후시기를 제외하고는 경주를 '월성군'이라고 나타낸 기록이 없기 때문입니다.
근래에 이 '월성군(月城郡)' 군명을 따서 ‘월성이씨’라고 한다는 주장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아닙니다.
신라 초기부터 경주를 '계림(鷄林)' , '월성(月城)'이라 불렀는데 이에 연유하여 경주이씨를 옛스럽고 고풍스러운 이름으로 경주의 옛이름인 '월성'을 따서 ‘월성이씨’라고 한 것입니다.
즉 오늘에 와서 후손들이 고풍스럽고 예스런 지역명인 '계림' . ‘월성’을 따서 '계림이씨' . ‘월성이씨’라고 하는 것입니다.
아래의 경주를 가리키는 말이 쓰였던 때를 시대별로 나타낸 것이니 참고하기 바랍니다.
►기원전 57년 6월 8일(음력 4월 28일) 신라가 건국되고 기원전 37년 박혁거세 거서간은 반월성에 성을 쌓고 금성(金城)이라 하였으며 뒤에 월성(月城)이라 부르기도 하였고 나라 이름을 ‘서라벌(徐羅伐)’. ‘사라(斯羅)’. ‘사로(斯盧)’라 하였다.
►탈해왕(57~80년) 때는 ‘시림(始林)’. ‘계림(鷄林)’이라고 불렸다
►기림왕(298~310년) 때 ‘신라(新羅)’라 불렀다.
►935년 고려 태조(왕건) 18년에 신라가 멸망함으로 이 지역을 ‘경주(慶州)’로 칭했다.
►987년 성종(成宗) 때는 ‘동경(東京)’이라 불렀으며,
►1008년 목종(穆宗) 때는 ‘낙랑군(樂浪郡)’
►1012년 다시 ‘경주(慶州)’로 되었다가
►1308년 충렬왕 때 ‘계림부(鷄林府)’로 개칭하였다.
►1401년 이후 조선 태종 때는 ‘경주부(慶州府)’로 불렸고
►1895년 고종의 대대적인 행정 개편으로 ‘경주군(慶州郡)’으로 개칭되었다.
►1955년 9월 1일 경주군 경주읍과 내동면 등이 경주시(慶州市)로 승격되고, 경주군은 ‘월성군(月城郡)’으로 개칭되었다.
►1989년 1월 1일 월성군을 ‘경주군(慶州郡)’으로 개칭하였다.
►1995년 1월 1일 경주시와 경주군을 통합하여 도농복합형태의 ‘경주시(慶州市)’가 설치되었다.
► 경주이씨 대동보인 1987년도 간행 정묘보이며 중앙표준보인 경주이씨 대종보 총편(大宗譜總編)에 경주이씨 건치 연혁(慶州李氏建置沿革)에 부명(府名)과 군명(郡名)으로 진한(辰韓). 서야벌(徐耶伐). 사로(斯盧). 사라(斯羅). 신라(新羅). 낙랑(樂浪). 계림(鷄林). 월성(月城). 동경(東京). 금오(金鰲). 문천(蚊川)으로도 불렀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대체로 이들 지역명이 신라시대부터 불린 지역명이니까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에 부명(府名)이나 군명(郡名)으로 불렀을 것으로 보여집니다.
금오(金鰲)는 현 ‘남산(南山)’을 말하고 문천(蚊川)은 반월성의 남쪽 밑을 흐르는 현 ‘남천(南川)’을 말합니다.
해서 1955년 ‘월성군’에서 ‘월성’이라는 말이 처음 사용되어 이를 따와서 ‘월성이씨’로 한 것이 아니고 신라 시대 때부터 현 반월성 터(반달 모양의 지형)에 성을 쌓고 금성(金城)이라 하였고 이 궁성이 반달 지형위에 세워졌기 때문에 반월성을 줄여 '월성'이라고도 한 것입니다.
즉 ‘월성’이라 부른 데에서 고풍스러운 옛것을 취하여 ‘월성이씨’라고 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