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사와 차례 (좋은 글)
제사의 기원은 샤머니즘을 바탕으로 한 자연숭배와 연관이 깊다.
고대의 사람들이 신의 가호로 재앙을 피하기 위해 천지신명께 정성을 올린 것이 제사의 시작이다.
우리의 제사는 조상의 넋을 기리고 그 은혜에 보답하고자 후손들이 마음을 다해 예를 올리는 전통문화이다.
고려시대 중국의 주자학이 전래되면서 조상 제사 의식도 함께 유입되었는데, 당시는 불교가 국교였기에 제사를 지내지 않았다.
그러다가 고려 말부터 제사를 지내기 시작했고, 조선시대에 민간에 널리 장려되었다.
처음에 제사는 조정 중신과 일부 양반들 사이에만 행해지다가 조선 중기 이후 평민에게도 일반화됐다.
제사가 많은 폐단을 겪으면서도 지금까지 행해지는 것은, 죽은 조상신이 후손을 지켜주고 복을 준다는 기복사상(祈福思想)에 기인한 것이라 볼 수 있다.
천주교가 처음 우리나라에 들어왔을 때에는 조상제사를 우상숭배로 여겨 금지하였으나, 교황 비오 12세가 1939년 「중국 의식(儀式)에 관한 훈령」을 통해 유교의 조상제사는 종교의식이 아니요, 시민의식이라며 조상제사를 허락하였다.
개신교는 제사를 우상숭배로 여기기 때문에 제사를 지내지 않는다.
대신, 성경에 부모를 공경하라고 되어 있어 살아계신 부모님께 효도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제사의 종류는 크게 기제(忌祭), 차례(茶禮), 묘제(墓祭)의 세 가지로 나눈다.
기제는 고인이 돌아가신 기일(忌日)에 지내는 제사, 차례는 설날과 추석에 지내는 제사이다.
묘제는 한식과 추석 때에 산소에 찾아가 음식을 차려 놓고 지내는 제사를 말한다.
차례에는 설날 아침 조상에 대한 세배를 드리는 ‘정조다례(正朝茶禮)’ 또는 ‘떡국차례’와 한 해 농사가 잘 된 것을 감사하며 햅쌀로 밥을 짓고, 송편을 빚어 올리는 추석차례가 있다.
예전에는 이외에도 동지, 매월 초하루와 보름 등 1년에 차례가 무려 31회나 됐지만, 이제 설과 추석 두 번의 차례만 지낸다.
이는 1939년 1년에 양력 1월 1일과 추석(음력 8월 15일) 두 번만 차례를 지내도록 한 조선총독부의 「의례준칙(儀禮準則)」의 영향도 컸다.
① 차례는 원래 차를 올린다고 하여 차를 올리는 례라고 하였다.
이는 차를 즐겨 마시는 중국에서 유래한 말로, *우리의 차례 상에는 차를 올리지 않는다.
다만, 차례(茶禮)때는 주과포(술·과일·포)와 시절 음식을 차려 술을 한 번만 올리는 간소한 약식 제사를 지냈다.
소견)제사의 순서에 헌다(獻茶)라는 순서가 있다.
차도 올리지 않고 헌다라고 했겠는가?
②원래 제사는 자시(子時, 밤 11시∼새벽 1시)에 지내고, 차례는 낮에 지냈다.
그러나 현대에 와서는 *편의상 제사시간을 앞당겨 저녁 8∼10시 사이에 지내는 경우가 많고, 차례는 주로 명절날 아침에 지낸다.
소견) 고인이 돌아가신 날이 기일이고 기일에 기제사로 신위를 모신다.
제사 시간은 집안에서 기일 오전 0시 이후 밤중에서 새벽 동트기 전까지 모시든가 밤중에 제사를 모시지 못하였으면 이날 오후 저녁시대인 밤에 제사를 모셔야 한다.
제사시간을 앞당겨 저녁 8∼10시 사이에 지내는 것은 기일이 아니기 때문에 기제사가 아니다.
제사상 차림 법은 조율시이(棗栗枾梨), 좌포우혜(左脯右醯), 어동육서(魚東肉西), 홍동백서(紅東白西), 두동미서(頭東尾西) 등 규범이 있지만, 집안형편에 따라 달라지기도 한다.
『주자가례(朱子家禮)』와 『사례편람(四禮便覽)』 등 제례와 관련된 예서(禮書)에 보면 소박하고 간소한 제사상이었으나, 조상 제사를 통해 가문의 위세를 과시하려는 경향으로 제사음식과 제사절차가 점점 화려하고 복잡해졌다고 한다.
제사를 받들어 지내는 봉사(奉祀) 대상은 시대에 따라 바뀌었다.
신분에 따라 차등을 두어 벼슬이 높을수록 더 윗대 조상까지 제사를 지냈다.
조선 초기에는 1품 이상은 3대 봉사, 7품 이상은 2대 봉사, 일반 서민은 부모 제사만 지냈지만, 갑오개혁 이후 신분제가 철폐되면서 너나 할 것 없이 4대 봉사에 집착하게 되었다.
1969년 정부가 「가정의례준칙」을 제정해 봉사는 2대조까지로 하고, 성묘는 제수를 마련하지 않거나 간소하게 한다고 공표했으나, 지금까지도 고조부까지 4대봉사(四代奉祀)를 하는 집안이 많다.
명절 차례와 1년에 몇 번씩 돌아오는 제삿날이 오면 육체적·정신적 부담으로 제사증후군, 명절증후군을 호소하는 주부들이 많다.
장보기부터 뒷설거지까지 온통 여성들의 몫이기 때문이다.
1990년대 말 여성민우회에서 명절과 제사 때의 성 차별을 해소하기 위한 캠페인을 벌였는데, ‘웃는 명절, 명절과의 평등한 만남’이라는 지침서에는 좋은 명절 만드는 5가지 방법으로 “남녀가 함께 일하고 함께 쉰다.
조상 모시기, 딸도 할 수 있다.
시집과 친정을 번갈아 방문한다.
제사 때 여자도 절을 한다.
여성에게만 해당하는 명절 금기(禁忌)를 없앤다.” 등을 제안하고 있다.
2000년대 들면서 제사 풍속도도 많이 달라지고 있다.
변화의 주체는 이제 며느리에서 시어머니로 올라서게 된 50, 60대 여성들로 자신은 참아왔지만 제사 스트레스를 며느리에게까지 물려주고 싶지 않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였다.
변화의 핵심은 ‘간소화’였다.
제사를 대신해 가족들끼리 모여 간단히 추모식으로 대신하거나 ③여러 조상들의 ‘기제사’를 한번으로 통합하고, 제사상에 올리는 음식의 가짓수를 줄이는 것이다.
소견)
기제사가 무엇인지. 합제사가 무엇인지를 모르고 부부합제, 조손합제를 말하고 있다.
장남 뿐 아니라 자녀들이 번갈아 가며 제사를 지내는 ‘순번제사’도 늘고 있다.
1989년 이후 「친족법」의 개정으로 모든 자녀에게 균등하게 재산을 상속하는 만큼 제사도 자식들에게 골고루 돌아가야 한다는 의식 때문이다.
달라진 제사 풍경에 간소하고 편리한 것만 찾는 지나친 실리주의라고 비판하는 측에서는 “도덕윤리가 무너지고 효친 경로사상이 희박해지며, 탈선 청소년문제가 심각해진 지금이야말로 조상을 섬기는 제사나 차례의 의미를 되새겨서 소중한 풍습으로 지켜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제사는 자식들이 한자리에 모여 돌아가신 분을 추모하고 태어난 근본에 보답하는 정성의 표시이자, 가족 간의 화목을 도모하는 자리이다.
방법과 절차를 간소화 한다면 제사는 골치 아픈 집안 행사가 아니라 세대와 세대를 이어 주는 ‘소중한 열쇠’가 될 수도 있다.